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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동아시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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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사] 조공・책봉 관계의 형성_한 및 남북조 시대 조공・책봉 관계의 형성_한 및 남북조 시대   조공・책봉의 외교 질서     한은 흉노에게 패배한 후, 흉노의 왕에게 공주를 시집보내고 매년 많은 물자를 보내는 조건으로 흉노와 화친을 맺었다. 이때부터 중원의 왕조는 주변국과 외교 관계를 맺기 시작하였다.      무제 이후 한이 동아시아의 강대국으로 성장하면서 대외 관계에 유교적 통치 이념과 화이관에 바탕을 둔 조공과 책봉의 형식이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조공은 주변국이 중원 왕조에 예물을 바치며 형식적인 존중을 표명하는 행위이다. 이에 대해 책봉은 중원 왕조가 주변국의 군주에게 그 지배권을 선언적으로 확인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조공·책봉 관계는 직접적인 지배나 실제적인 간섭과 관련이 없는 형식적인 외교의 틀에 불과하였다. 한은 책봉이라는 명분..
[동아시아사] 문물의 전파와 상호 교류의 증대 문물의 전파와 상호 교류의 증대   문물의 전파     동아시아 지역의 인구 이동으로 다양한 문물이 전파되고 각 지역 사이의 교류가 활발해졌다. 특히 철기와 농경 기술의 전파는 각 지역의 사회 변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철기는 춘추·전국 시대에 중원 지역에 보급되기 시작하여 주로 무기와 농기구의 제작에 사용되었다. 진·한이 교체되는 시기에 화북 지역 주민들의 일부가 만주와 한반도 등지로 이주하면서 철기 문화가 한반도에 본격적으로 전파되었다. 특히 철이 많이 생산된 가야는 일본 열도에 철을 수출하였으며, 한 군현과 한반도, 일본 열도를 연결하는 교역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농업 기술의 확산에는 한족의 강남 이주가 주요한 계기를 이루었다. 선진적인 토목·관개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화북 지방의..
[동아시아사] 동아시아 지역 질서의 재편 동아시아 지역 질서의 재편   각 지역 통일 정권의 등장     6세기 후반에 접어들어 동아시아에 커다란 변화가 나타났다. 몇 세기 동안 계속된 인구 이동과 그에 따른 새로운 국가 건설, 각국 사이의 전쟁 등이 마무리되면서 각 지역에 통일 정권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수는 남북조를 통일한 이후 주변 지역에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였다. 먼저 북방에서 큰 세력을 형성하고 중원을 압박하던 돌궐을 여러 차례 공격하여 중앙아시아에 진출하였다. 수는 고구려와 돌궐의 연계를 경계하였고, 통일 과정에서 불만을 가졌던 군대 세력을 달래 줄 필요가 있었다. 이를 해결하고자 대군(113만)을 동원해 고구려를 세 차례에 걸쳐 침공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수는 고구려 원정의 실패가 주요 원인이 되어 멸망하였다.     수의 ..
[동아시아사] 국가의 통합과 발전 국가의 통합과 발전   화북을 장악한 북방 민족     3세기 초에 후한이 멸망하고 이어 위·촉·오로 나뉘어 경쟁하는 삼국 시대로 접어들었다. 삼국의 분열은 진(서진)에 의해 통일되었다. 이 무렵 화북으로 유입된 북방 민족은 점차 세력을 형성하였다. 특히 3세기말 진이 내분으로 급속히 쇠퇴하자 북방 민족은 화북 지방에 여러 국가를 세웠다( 5호 16국 시대). 이러한 혼란은 선비족의 탁발부가 세운 북위가 화북 일대를 통일할 때까지 계속되었다(439).     화북 지방을 장악한 북방 민족은 한족을 통치하기 위해 한족의 통치 체제를 수용하였다. 특히 화북 일대를 통일한 북위는 효문제 때 적극적인 중국화(한화) 정책을 추진하여 호족과 한족의 융합을 시도하였다. 효문제는 수도를 남쪽의 뤄양으로 옮기고 한족의 ..
[동아시아사] 인구 이동과 국가의 성립_한반도・일본 열도로의 이동 인구 이동과 국가의 성립_한반도・일본 열도로의 이동   한반도로의 이동     기원전 1세기 무렵 만주 북부의 쑹화강 지역에 살던 부여족 내부에 분열이 일어나자, 주몽 집단이 압록강 중류의 졸본 지역으로 남하하여 고구려를 건국하였다(기원전 37). 고구려는 남하한 부여족과 토착 세력인 맥족이 연합하여 세운 나라였다. 주몽 집단은 점차 세력을 강화하여 토착 세력을 누르고 나라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천도한 후 고구려의 국력은 더욱 신장하였다.     고구려가 성장하면서 그 내부에 정치적 갈등이 발생하자, 지배층 일부가 한반도 중부로 남하하였다.주몽이 북부여에서 낳은 아들이 오자 태자로 삼으니 비류와 온조는 태자에게 용납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였다. 마침내 오간, 마려 등 신하들과 함께 ..
[동아시아사] 인구 이동과 국가의 성립_북방 민족과 한족의 이동 인구 이동과 국가의 성립_북방 민족과 한족의 이동   인구 이동의 요인     기원 전후 시기부터 7, 8세기경까지 동아시아 일대에서는 유목민과 농경민 모두 근거지를 떠나 새로운 지역에 정착하는 대규모 인구 이동이 일어났다. 이 시기 중국과 만주, 한반도 지역에서 북으로부터 남으로 인구가 이동하였다. 특히 중국 북부 초원 지대에서 화북평원으로, 만주에서 한반도 북부와 중부로, 그리고 한반도에서 다시 일본 열도로 향하는 연쇄적인 인구 이동이 발생하였다.     기후 변화와 그에 따른 자연재해로 나타난 생활환경의 변화, 인구 증가, 정치적 혼란, 부족 간 갈등과 국가 사이의 전쟁 등이 인구 이동을 자극하였다. 또 교류의 활성화도 인구 이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는데, 이는 새로운 문화와 접하면서 더 나은 ..
[동아시아사] 국가 간의 교류와 전쟁 국가 간의 교류와 전쟁   동아시아 국가 간의 교류     동아시아 국가들은 초기 국가 단계 때부터 빈번하게 교류하였다. 영역을 확장하고자 주변의 나라를 통합하거나 정복하였고, 생활에 필요한 물자와 인력을 얻기 위해 자주 다른 나라를 침략하였다. 한편으로는 국력을 증대하고 군주권을 강화하고자 철기를 비롯한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중원 왕조와 흉노     기원전 3세기 후반 진시황제는 장군 몽염에게 대군을 주어 흉노를 공격하게 하였다. 진은 흉노를 북방 초원 지대로 몰아내고 오르도스 지방을 차지하였다. 그 후 흉노의 재침입을 막기 위해 전국 시대에 여러 나라가 쌓은 장성을 연결하여 만리장성을 건설하였다.     유방이 중원을 통일한 직후 흉노의 묵특 선우는 만리장성을 넘어 한을 공격하였다...
[동아시아사] 국가의 성립_유목 지대, 만주와 한반도, 일본 열도 국가의 성립_유목 지대, 만주와 한반도, 일본 열도   유목 지대     유목 지대에서는 자연환경이 척박하고 식량이 부족하여 농경 지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가의 성립이 늦은 편이었다. 진이 중원을 통일할 무렵, 북방의 초원 지대에서 흉노가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스키타이의 기마 기술을 바탕으로 편성된 기마병은 기동력이 뛰어났으므로, 흉노는 군사적으로 성장하여 초원지대의 패자가 되었다. 흉노의 팽창과 남하에 위협을 느낀 진의 시황제는 이들을 오르도스 지역에서 몰아내고 그 북쪽에 만리장성을 쌓았다. 흉노는 진의 공격을 받아 근거지를 상실하고 큰 타격을 입었으나, 이러한 위기 상황은 오히려 기마술과 기동성을 갖춘 흉노 사회의 군사화를 촉진하였다.     흉노 제국은 초원 지대에 흩어져 있던 여러 부족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