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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동아시아사

[동아시아사] 국가의 통합과 발전

국가의 통합과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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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통합과 발전

 

화북을 장악한 북방 민족

     3세기 초에 후한이 멸망하고 이어 위·촉·오로 나뉘어 경쟁하는 삼국 시대로 접어들었다. 삼국의 분열은 진(서진)에 의해 통일되었다. 이 무렵 화북으로 유입된 북방 민족은 점차 세력을 형성하였다. 특히 3세기말 진이 내분으로 급속히 쇠퇴하자 북방 민족은 화북 지방에 여러 국가를 세웠다( 5호 16국 시대). 이러한 혼란은 선비족의 탁발부가 세운 북위가 화북 일대를 통일할 때까지 계속되었다(439).

     화북 지방을 장악한 북방 민족은 한족을 통치하기 위해 한족의 통치 체제를 수용하였다. 특히 화북 일대를 통일한 북위는 효문제 때 적극적인 중국화(한화) 정책을 추진하여 호족과 한족의 융합을 시도하였다. 효문제는 수도를 남쪽의 뤄양으로 옮기고 한족의 언어와 풍습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제 북방의 언어를 금지하고, 오로지 올바른 중원의 언어만 사용토록 한다. 서른 살 이상인 사람은 습관이 굳어져 갑자기 말을 바꾸기 어렵기에 어쩔 수 없지만, 조정에 있는 서른 살 이하의 사람은 예전처럼 말해서는 안 된다. 만약 고의로 북방의 언어를 쓴다면 관직을 박탈할 것이다.
- 『위서』 -

 

     또한 선비족의 성씨를 한족의 성으로 바꾸고 한족과의 결혼을 장려하였다. 이로인해 화북의 한족 사이에도 북방 민족의 습속이 전파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화북 일대에서 유목 문화와 한족 문화가 점차 융합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선비족 내부의 반발을 사기도 하였다. 

     한편 북방 민족이 화북 지방을 장악하자, 한족은 창장강 이남으로 이동하여 동진을 세웠다. 이주 정권인 남조도 강남 지방의 토착민들과 융합하는 데 주력하였다. 남조는 풍부한 노동력과 선진적인 토목 기술을 바탕으로 강남 지방을 개발하여 농업 생산력을 발전시켰다.

     동진은 이후 송·제·양·진으로 이어지며, 북위 및 그 뒤를 이은 중원 왕조와 대립하였다. 이렇게 중국이 남북으로 나뉜 시기를 남북조 시대라고 부른다.

 

위진남북조시대
출처 - MiraeN 고등학교 동아시아사

 

 

 

 

삼국 간의 항쟁

     북방 민족이 세운 북조와 한족의 남조가 대립하고 있던 시기, 한반도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경쟁하였다. 삼국은 한강 유역을 둘러싸고 크고 작은 군사적 충돌을 벌이는 한편, 밖으로는 남북조 및 왜를 비롯한 국가들과 연계하여 활발하게 외교 활동을 펼치면서 국가의 생존과 영역의 확대를 꾀하였다.

     가장 먼저 주도권을 잡은 백제는 4세기에 강력한 국가로 성장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대외 정복 전쟁을 펼쳤다. 백제는 한때 고구려를 위협하기도 하였으며, 남조 및 왜와 연계하여 세력을 유지하려 하였다. 왜에 불교와 한자를 전하였으며, 기술자들이 왜로 건너가 많은 사찰을 건립하였다. 백제는 한강 유역을 기반으로 남쪽 마한 지역을 정복하고 탐라까지 복속시켜 적극적으로 해외 교류에 나섰다. 하지만 5세기 후반 고구려의 장수왕에게 한강 유역을 잃고 수도를 웅진(공주)으로 옮겼다. 

     고구려는 신라를 지원하고 백제를 압박하면서 5세기에 삼국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광개토 대왕과 장수왕 때 고구려는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 서쪽으로 요동을 차지하고 남으로 백제를 공격하여 한강 유역을 확보하였다. 이와 함께 중국의 남조 및 북조와 다각적인 외교 관계를 맺었다.

     신라는 6세기에 접어들면서 점차 발전의 기반을 다져 나갔다. 특히 진흥왕은 대대적인 대외 팽창을 통해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이어 함경도 지방까지 진출하였다. 남으로는 대가야를 정복함으로써 낙동강 유역을 모두 장악하였다. 이후 한강 유역을 발판으로 황해를 거쳐 중국과 직접 교류하였다.

 

삼국 간의 항쟁 지도
출처 - MiraeN 고등학교 동아시아사

 

 

 

 

야마토 정권

     일본 열도에서는 4세기경 유력 호족이 연합하여 야마토 정권을 세웠다. 야마토 정권은 각지의 호족을 중앙 정치 체제에 편입시키기 위해 씨성 제도를 시행하였다. 이후 소가 씨, 모노노베 씨와 같은 호족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후손에게 물려주면서 귀족으로 성장했다.

     한반도의 도왜인이 가지고 온 문화도 야마토 정권의 성장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대표적인 것이 제철 기술과 불교였다. 한반도와 중원에서 선진 문물을 수용하며 점차 발전하여 5세기경에는 일본 열도의 상당 부분을 지배하였고, 점차 전국으로 세력을 확대하여 일본 열도를 통일하여 갔다. 야마토 정권의 지배자들은 거대한 무덤(전방후원분)을 만들어 권력을 과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