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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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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일] 7월 17일 제헌절, 제헌절 역사, 제헌절 경축식 제헌절   제헌절(制憲節)은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공포된 것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국경일입니다. 올해는 제76주년 제헌절입니다.   역사     제헌절은 헌법의 제정・공포된 것을 축하하고, 그 이념 수호를 다짐하며 준법정신을 앙양하기 위해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의해서 제정되었습니다.      당초 '헌법공포일'이었던 명칭은 법률 제정 과정에서 '제헌절'로 변경되었습니다. 기념식은 1987년 제39주년까지는 행정부에서 주관하였으며, 1988년 제40주년 기념식부터 국회에서 주관하였습니다.    공휴일 제외 이유       참여정부가 주 5일제(주 40시간제)를 시행하자 재계에서 근로시간 감축에 대한 우려로 공휴일 축소를 요구했고, 2005년 6월 30일..
[24절기] 대서_일년 중 가장 무더운 시기 대서(大暑)     대서(大暑)는 24절기 중 12번째 절기로 태양의 황경이 120°에 드는 때입니다. 양력으로 대개 7월 22일~7월 23일인데 올해는 7월 22일이고, 소서와 입추 사이에 있습니다. 입추와 더불어 더위의 최고 절정 기간입니다. 더위를 소서와 대서로 나누어 부르는 것은 무더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기후     대서는 '몹시 심한 더위'라는 뜻으로 날씨가 매우 덥고 장마가 끝난 후 가장 더위가 심한 때입니다.     대서는 음력으로 6월에 있으며 대체로 중복(中伏) 무렵입니다. 불볕더위, 찜통더위, 열대야도 이때 겪게 됩니다.      작물이 빨리 자라는 시기라 이때 냉해나 비가 오면 작물에 지장이 많습니다.      대서를 전후로 본격적으로 일출 시간이 늦..
[동아시아사] 동아시아의 화해와 협력을 위한 노력 동아시아의 화해와 협력을 위한 노력   역사 인식 공유를 위한 역사 대화     한・중・일 또는 한・일의 학자, 교사, 시민은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에 대응하고 역사 갈등을 완화하고자 공동 역사 교재를 발간하였다. 공동 역사 교재는 서로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배워 동아시아의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공통의 역사 인식을 마련하고자 하는 역사 대화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동아시아의 역사 엔지오(NGO)들은 세계 여러 나라의 단체들과 함께 역사 화해와 평화 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역사 엔지오(NGO)는 역사적 갈등이나 오해, 모순들을 합리적인 대화와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시민 단체를 가리킨다. 이들은 격년으로 세계 대회를 개최하여 연대와 협..
[동아시아사] 동아시아의 역사 인식 갈등 동아시아의 역사 인식 갈등   일본군 '위안부' 문제     일본 정부는 침략 전쟁 중 식민지 여성을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하였다. 일본군‘위안부’로 동원된 한국 여성의 수는 최대 28만 명으로 추산될 뿐 정확한 인원은 파악되고 있지 않다.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전쟁 중에 희생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귀국한 사람도 있으나, 개인 사정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외국에 잔류한 사람 도 있다. 귀국한 사람 중 상당수는 전쟁 중 입은 정신적·육체적 피해를 극복하지 못한 채 오랫동안 불행한 삶을 영위하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모집이 민간업자가 한 일로 정부나 군은 관계없다는 주장만을 되풀이하였다. 1991년에 한국의 김학순 할머니가 자신이 일본군‘위안부’였음을 공개 증언하면서 일본..
[동아시아사] 동아시아의 지역 갈등 동아시아의 지역 갈등   영토 분쟁     동아시아의 해양 영토 분쟁은 대표적으로 러·일 간의 남쿠릴 열도(북방 도서) 분쟁, 중·일 간의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그리고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가 관련된 시사(파라셀) 군도 및 난사(스프래틀리) 군도 분쟁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영유권 분쟁은 영토의 귀속과 배분에 대한 분쟁으로, 식민지 지배의 처리 과정이나 전후 점령지의 처리 과정에서 비롯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영유권 분쟁은 근대 이후의 역사 문제와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또한 1982년 「해양법에 관한 국제 연합 협약(UNCLOS)」에 근거하여 설정된 배타적 경제 수역(EEZ)도 각국 간의 분쟁을 더욱 촉진하였다. 특히 근래에 해당 도서 주변 해역에 천연가스와 석유가 대규모로 ..
[동아시아사] 동아시아 역내 교역과 문화 교류의 확대 동아시아 역내 교역과 문화 교류의 확대   동아시아 국가 간 교역 활성화     냉전 체제하에서 동아시아 교역망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국, 일본, 타이완이 연결된 형태였다. 그런데 1970년대 말 중국의 개혁·개방 후 동아시아 역내 무역은 급속하게 증가하였다.      일본은 중국의 주요 투자국으로 부상하였으며, 한국도 중국과 국교를 수립하면서 자본 투자와 수출입에 적극적으로 임하였다. 한국과 중국은 2015년 한중 자유 무역 협정(한중 FTA)을 체결하고, 아시아 인프라 투자 은행(AIIB)의 창립에 참여하였다. 타이완에서도 중국이 제1 수출 대상국으로 부상하였으며, 타이완 기업들의 대중국 투자가 큰 폭으로 늘어났다.      역내 교역의 활성화로 세계 경제에서 동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높아졌다...
[동아시아사] 베트남의 개혁・개방과 도약 베트남의 개혁・개방과 도약   개혁・개방과 도약     베트남은 오랜 전쟁으로 경제가 심각한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베트남 정부는 남부에서 토지 개혁과 농업의 집단화를 단행하면서 중공업을 우선시하는 소련 모델의 사회주의 공업화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농민의 반발로 농업 생산은 오히려 저하되었다. 그 결과 집단 농장에서 나오는 수익을 공업화 재원으로 활용하려 한 계획이 실패하였다. 더구나 캄보디아 내전에 개입하고 중국과의 국경 분쟁에 따른 과도한 재정 지출, 미국의 경제 제재 등으로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또 사회주의 정책의 실패로 식량난도 가중되었다.     1980년대 들어 중국,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이 이른바 사회주의 시장 경제 정책으로 방향을 선회하였다. 베트남 정부도 1986년부터 ‘도이머이’라..
[동아시아사] 북한의 체제 고착화와 경제 건설 북한의 체제 고착화와 경제 건설   사회주의 경제 건설과 김일성 유일 지배 체제의 확립     북한은 1950년대 중반부터 대대적으로 전후 복구 사업을 추진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농업 집단화 사업을 진행하였으며 개인 상공업을 없애고 사유 재산제를 인정하지 않았다. 아울러 북한은 중공업 중심의 경제 건설과 급진적인 사회주의 개조 정책에 중점을 두고 복구 사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농공 간의 성장 불균형이 심해지자 연안파가 이를 비판하였다. 이에 김일성은 이들을 종파 분자로 몰아 제거하고 반대 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하였다(8월 종파 사건). 이는 당내 비판 세력의 소멸을 의미하는 동시에, 김일성의 중공업 우선 발전 전략의 채택으로 이어져 농업과 경공업의 희생을 초래하였다. 나아가 김일성은 소련 등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