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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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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사] 동아시아의 자연환경 동아시아의 자연환경   지형과 지세     동아시아 지역은 히말라야산맥을 경계로 인도를 비롯한 남아시아와 구분된다. 동아시아의 서쪽 지역에는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티베트고원이 펼쳐져 있다. 평균 해발 고도 4,500m가 넘는 티베트고원을 중심으로, 북쪽과 동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점차 낮아지는 커다란 부채 모양의 지형을 하고 있다.     티베트고원의 바깥으로는 해발 고도 1,000~2,000m의 고원과 산간분지, 사막 등이 분포한다. 다시 그 바깥으로는 해발 고도 1,000m 이하의 구릉과 평원지대가 흩어져 있는데, 중국 동부 지역과 한반도가 여기에 속한다. 중국 동부 지역에는 큰 강을 따라 낮은 평원 지대가 형성되어 있는데, 랴오허강과 쑹화강 유역의 둥베이평원(만주), 황허강 유역의 화베이평원, ..
[세계사 속으로] 트라팔가르 해전 트라팔가르 해전  |  역사적 해전     1805년 10월 21일에 벌어진 트라팔가르 해전은 나폴레옹 전쟁의 일환으로, 영국 해군과 프랑스-스페인 연합 함대 간의 전투였다.        허레이쇼 넬슨이 지휘하는 영국 함대는 HMS 빅토리를 중심으로 27척의 전함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이에 맞서는 프랑스-스페인 연합 함대는 33척의 전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트라팔가르곶에서 벌어진 이 해전은 대서양 스페인 남서해안에서 전개되었으며, 영국 함대는 22척의 적 전함을 격멸시키면서 승리를 거두었다. 영국은 전투에서 어떠한 함선도 상실하지 않았으며, 이를 통해 영국의 해상 제해권이 강화되었다. 넬슨은 전투 중 프랑스 소총수에 의해 저격당하고 전투 종료 직전에 사망했으며, 프랑스 제독 빌뇌브는 함선 부센..
[24절기] 망종_ 보리를 베고 모내기가 한창인 계절 망종(芒種)     망종(芒種)은 24절기 중 아홉 번째 절기이고, 태양의 황경이 75°에 드는 때입니다. 양력으로 대개 6월 5일~6월 6일인데 올해는 6월 5일이고, 소만(小滿)과 하지(夏至) 사이에 있습니다. 망종의 망(芒)은 벼나 보리처럼 수염(까끄라기)이 있는 곡물을, 종(種)은 씨앗을 말합니다. 망종은 그 이름처럼 까끄라기 곡식의 종자를 뿌려야 할 적당한 시기라는 뜻입니다.   풍속     예로부터 '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망종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망종까지 보리를 베어 햇보리를 먹을 수 있고, 논에 벼도 심고 밭갈이도 합니다. 이 무렵 보리 베기와 모내기가 겹쳐 1년 중 가장 바쁜 때입니다.      망종 날 풋보리 이삭을 뜯어와서 손으로 비벼 보리알을 모은 뒤..
[동아시아사] 동아시아의 범위 동아시아의 범위 및 동아시아사 학습의 의의   지리적 범위와 특성     동아시아는 지리・문화・역사적 개념이다. 동아시아는 그 범위가 넓고, 지역에 따라 지형・기후・식생 등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지리적 범위는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에 있고 북서 태평양과 접해 있다. 동서로는 일본 열도에서 티베트고원, 남북으로는 베트남에서 몽골고원에 이른다. 이 지역에는 한민족, 한족, 일본 민족, 몽골족, 위구르족, 티베트족, 비엣족 등이 다양한 종족과 민족이 활동하였으며, 오늘날 이 지역에는 한국, 중국, 몽골, 베트남 등의 나라가 있다.       동아시아의 여러 민족과 국가는 일찍부터 활발하게 교류하였고, 때로는 갈등을 겪으면서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특히 동아시아의 한국, 중국, 일본은 역사적으로 영향을..
[세계사 속으로]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투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투  |  제국의 최후 승부     1815년 6월 18일에 벌어진 워털루 전투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패배로 끝난 역사적인 충돌이다. 이 전투는 나폴레옹이 다시 황제로 등극하고 유럽 국가들이 제7차 대프랑스 동맹을 구성한 뒤 발발했다.        영국의 웰링턴 공작과 프로이센군이 이끄는 연합군은 나폴레옹의 북부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나폴레옹은 이 패배 이후 폐위하고, 연합군은 프랑스에 침공하여 나폴레옹 전쟁을 완전히 종결시켰다. 워털루 전투는 나폴레옹의 통치를 종식시키고, 그의 백일천하를 끝내며 프랑스 제1제국의 몰락을 야기한 결정적인 전투로 기억된다.  배경_나폴레옹의 부활과 워털루의 비극     1813년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패배한 나폴레옹은 1814년 ..
[세계사 속으로] 아이티 혁명 아이티 혁명  |  불의에 맞선 자주적인 혁명     아이티 혁명(Haitian Revolution)은 1791년부터 1804년 사이에 아이티의 노예, 식민지 주민자,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개척자의 군대, 그리고 기타 여러 세력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갈등이다. 이 투쟁을 통해 아이티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고 노예였던 사람들이 건국한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식민 지배와 노예 제도     1492년 12월 이탈리아 항해사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라 이슬라 에스파뇰라(스페인의 섬, 히스파니올라)’라고 불리는 섬을 발견한 직후부터 스페인 사람들은 타이노족과 시보니족을 노예로 삼기 시작했다. 금을 채굴하기 위해 강요된 이 섬의 원주민들은 유럽의 질병과 가혹한 노동 조건으로 황..
[세계사 속으로] 흑사병 흑사병  |  유럽을 휩쓴 죽음의 그림자     14세기 유럽에서 창궐한 흑사병은 최악의 세계적 유행병으로 약 7,500만~2억 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흑사병의 병원균은 2010년~2011년 남유럽인들을 대상으로 한 DNA 분석에서 페스트균으로 확인되었다.       흑사병은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되어 비단길을 따라 서쪽으로 확산해 1343년경 크림반도에 닿았다. 그곳에서 부터 화물선에 들끓던 검은 쥐에 기생하는 동양쥐벼룩을 중간 숙주로 하여 지중해 해운망을 따라 유럽 전역에 퍼졌으며, 이로 인해 유럽 총인구의 30~60%가 목숨을 잃었다. 이로 인해 14세기 세계 인구는 약 1억 명 감소했으며, 17세기가 되어서야 이전 수준까지 회복될 수 있었다.14세기 페스트 유..
[세계사 속으로] 95개조 반박문 95개조 반박문  |  종교 혁명의 시작     95개조 반박문(Ninety-five Theses)은 마틴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대학 성당의 정문에 게시한 95개조로 구성된 교황에 대한 반박문이다. 면죄부 문제에 관한 논의를 위한 것으로 라틴어로 쓰여져 있다. 이 사건은 종교개혁의 시작이자 개신교의 시발점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루터는 원래 신학적이고 교회적인 개혁에 대한 그의 요구가 받아들여지고, 그의 반박문이 단지 전문 신학자들만 관심을 가질것이라고 생각하였고 가톨릭교회를 깨뜨릴 의도는 없었다. 그러나 당시의 다양한 정치적, 종교적 상황과 인쇄술이 발명되었다는 사실이 결합되어 몇 주 안에 독일 전역에 이 반박문이 알려지게 되었다. 루터는 마인츠의 대주교와 브란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