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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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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속으로] 바르바리 전쟁 바르바리 전쟁  |  바다의 도전     바르바리 국가의 해적들이 미국과 유럽 선박을 습격하는 행위에 대항하기 위한 군사적인 조치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연합과 바르바리 해적들 간에 발생한 해상 전쟁을 바르바리 전쟁이라고 한다.  제1차 바르바리 전쟁     제1차 바르바리 전쟁(The First Barbary War, 1801년 ~ 1805년) 또는 트리폴리 전쟁이나 바르바리 해안 전쟁은 미국과 바르바리 국가로 알려진 북서 아프리카 이슬람 국가들과의 전쟁이다.배경     유럽인들은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트리폴리, 튀니스, 알제리 세 나라를 바르바리 국가로 지칭했다. 이들 나라는 명목상으로는 오스만 제국에 속해 있었지만, 실제로는 독립적인 자치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국가들은 지중해 통과..
[세계사 속으로] 트라팔가르 해전 트라팔가르 해전  |  역사적 해전     1805년 10월 21일에 벌어진 트라팔가르 해전은 나폴레옹 전쟁의 일환으로, 영국 해군과 프랑스-스페인 연합 함대 간의 전투였다.        허레이쇼 넬슨이 지휘하는 영국 함대는 HMS 빅토리를 중심으로 27척의 전함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이에 맞서는 프랑스-스페인 연합 함대는 33척의 전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트라팔가르곶에서 벌어진 이 해전은 대서양 스페인 남서해안에서 전개되었으며, 영국 함대는 22척의 적 전함을 격멸시키면서 승리를 거두었다. 영국은 전투에서 어떠한 함선도 상실하지 않았으며, 이를 통해 영국의 해상 제해권이 강화되었다. 넬슨은 전투 중 프랑스 소총수에 의해 저격당하고 전투 종료 직전에 사망했으며, 프랑스 제독 빌뇌브는 함선 부센..
[세계사 속으로]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투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투  |  제국의 최후 승부     1815년 6월 18일에 벌어진 워털루 전투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패배로 끝난 역사적인 충돌이다. 이 전투는 나폴레옹이 다시 황제로 등극하고 유럽 국가들이 제7차 대프랑스 동맹을 구성한 뒤 발발했다.        영국의 웰링턴 공작과 프로이센군이 이끄는 연합군은 나폴레옹의 북부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나폴레옹은 이 패배 이후 폐위하고, 연합군은 프랑스에 침공하여 나폴레옹 전쟁을 완전히 종결시켰다. 워털루 전투는 나폴레옹의 통치를 종식시키고, 그의 백일천하를 끝내며 프랑스 제1제국의 몰락을 야기한 결정적인 전투로 기억된다.  배경_나폴레옹의 부활과 워털루의 비극     1813년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패배한 나폴레옹은 1814년 ..
[세계사 속으로] 아이티 혁명 아이티 혁명  |  불의에 맞선 자주적인 혁명     아이티 혁명(Haitian Revolution)은 1791년부터 1804년 사이에 아이티의 노예, 식민지 주민자,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개척자의 군대, 그리고 기타 여러 세력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갈등이다. 이 투쟁을 통해 아이티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고 노예였던 사람들이 건국한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식민 지배와 노예 제도     1492년 12월 이탈리아 항해사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라 이슬라 에스파뇰라(스페인의 섬, 히스파니올라)’라고 불리는 섬을 발견한 직후부터 스페인 사람들은 타이노족과 시보니족을 노예로 삼기 시작했다. 금을 채굴하기 위해 강요된 이 섬의 원주민들은 유럽의 질병과 가혹한 노동 조건으로 황..
[세계사 속으로] 흑사병 흑사병  |  유럽을 휩쓴 죽음의 그림자     14세기 유럽에서 창궐한 흑사병은 최악의 세계적 유행병으로 약 7,500만~2억 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흑사병의 병원균은 2010년~2011년 남유럽인들을 대상으로 한 DNA 분석에서 페스트균으로 확인되었다.       흑사병은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되어 비단길을 따라 서쪽으로 확산해 1343년경 크림반도에 닿았다. 그곳에서 부터 화물선에 들끓던 검은 쥐에 기생하는 동양쥐벼룩을 중간 숙주로 하여 지중해 해운망을 따라 유럽 전역에 퍼졌으며, 이로 인해 유럽 총인구의 30~60%가 목숨을 잃었다. 이로 인해 14세기 세계 인구는 약 1억 명 감소했으며, 17세기가 되어서야 이전 수준까지 회복될 수 있었다.14세기 페스트 유..
[세계사 속으로] 95개조 반박문 95개조 반박문  |  종교 혁명의 시작     95개조 반박문(Ninety-five Theses)은 마틴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대학 성당의 정문에 게시한 95개조로 구성된 교황에 대한 반박문이다. 면죄부 문제에 관한 논의를 위한 것으로 라틴어로 쓰여져 있다. 이 사건은 종교개혁의 시작이자 개신교의 시발점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루터는 원래 신학적이고 교회적인 개혁에 대한 그의 요구가 받아들여지고, 그의 반박문이 단지 전문 신학자들만 관심을 가질것이라고 생각하였고 가톨릭교회를 깨뜨릴 의도는 없었다. 그러나 당시의 다양한 정치적, 종교적 상황과 인쇄술이 발명되었다는 사실이 결합되어 몇 주 안에 독일 전역에 이 반박문이 알려지게 되었다. 루터는 마인츠의 대주교와 브란덴..
[세계사 속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레오나르도 다 빈치  |  시간을 넘어선 예술가     레오나르도 디 세르 피에로 다 빈치(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 1452년 4월 15일~1519년 5월 2일)는 화가, 조각가, 건축가, 발명가, 해부학자, 사상가였다. 그의 천부적인 재능은 많은 분야를 초월해서 "르네상스"라는 용어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오늘날 그는 그의 두 그림인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주로 독학으로, 항공학에서 인체 해부학까지의 연구에 대한 발명과 관찰, 이론을 수 십 권의 비밀 노트에 담았다. 그의 지성과 상상력의 조합으로 적어도 종이 위에서는 박쥐의 생리학과 비행 능력을 바탕으로 자전거, 헬리콥터, 그리고 비행기와 같은 발명품들을 만들 수 있었..
[세계사 속으로] 카노사의 굴욕 카노사의 굴욕  |  권력의 혼돈과 변혁     카노사의 굴욕(Humiliation of Canossa, Road to Canossa)은 1077년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가 자신을 파문한 교황 그레고리오 7세를 만나기 위해 이탈리아 북부의 카노사 성으로 가서 용서를 구한 사건이다. 교회의 성직자 임명권인 서임권을 둘러싸고 독일왕과 교황이 서로 대립하던 중에 발생하였다.       소식통에 따르면 그는 '중세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 중 하나'는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동안 성문 앞에서 3일 밤낮을 기다리며 무릎을 꿇고 간구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중세 기록가와 현대 역사가 사이에 이 사건이 황제에게 굴욕적인 패배였는지, 아니면 '훌륭한 대작'이었는지에 대한 많은 논쟁을 일으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