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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동아시아사

[동아시아사] 인구 이동과 국가의 성립_한반도・일본 열도로의 이동

인구 이동과 국가의 성립_한반도・일본 열도로의 이동 

 

썸네일 - 인구 이동과 국가의 성립
인구 이동과 국가의 성립

 

한반도로의 이동

     기원전 1세기 무렵 만주 북부의 쑹화강 지역에 살던 부여족 내부에 분열이 일어나자, 주몽 집단이 압록강 중류의 졸본 지역으로 남하하여 고구려를 건국하였다(기원전 37). 고구려는 남하한 부여족과 토착 세력인 맥족이 연합하여 세운 나라였다. 주몽 집단은 점차 세력을 강화하여 토착 세력을 누르고 나라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천도한 후 고구려의 국력은 더욱 신장하였다.

     고구려가 성장하면서 그 내부에 정치적 갈등이 발생하자, 지배층 일부가 한반도 중부로 남하하였다.

주몽이 북부여에서 낳은 아들이 오자 태자로 삼으니 비류와 온조는 태자에게 용납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였다. 마침내 오간, 마려 등 신하들과 함께 남쪽으로 가니 백성 가운데 그를 따르는 이가 많았다.
- 『삼국사기』 -

 

     남하한 이들은 한강 유역의 토착 세력과 함께 백제를 건국하였다(기원전 18). 이후 백제는 마한 세력을 통합하며 점차 한반도 남부 지역으로 세력을 넓혀 갔다.

     한편 기원전 2세기 말 고조선이 멸망한 후 유민 일부가 한반도 남부 지역으로 남하하였다. 철기 기술을 가지고 있던 이들 이주민과 경주 지역의 토착 세력과 연합하여 신라 건국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신라는 진한의 소국 가운데 하나인 사로국에서 출발하여 주변에 있는 소국을 병합하면서 진한의 주도 세력으로 발전하였다. 

     4세기에 고구려가 한 4군의 하나인 낙랑군을 멸망시키자, 낙랑군의 유민 일부가 한반도 남부로 이주하였다. 이들은 백제와 가야 연맹의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가야인의 일부는 바다를 건너 왜로 이주하였는데, 이후 두 지역 사이에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해졌다.

 

기원 전후 한반도로의 인구 이동
출처 - MiraeN 고등학교 동아시아사

 

 

 

 

일본 열도로의 이동

     한반도의 여러 나라가 각축을 벌이면서 주민 일부가 일본 열도로 건너갔다. 중국 남북조 시기에는 창장강 유역에 살던 한족 가운데 일본 열도로 이주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이렇게 일본 열도로 건너간 사람들을 ‘도왜인’이라 부른다. 도왜인은 새로운 토기 제조법이나 옷감 짜는 법 등 각종 선진 기술을 일본에 전해 주었다. 나아가 국가 운영에 필요한 유학·불교 등을 전함으로써 야마토 정권의 성립과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 이주한 사람들은 왜와 활발하게 인적·물적 교류 관계를 맺고 있던 백제와 가야 출신이 많았다. 고구려와 신라의 세력 확대, 그리고 삼국 간 전쟁의 격화 등 정치적 변화가 있을 때마다 많은 가야인, 고구려인, 백제인, 신라인의 일본 열도 이주가 증가하였다.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에도 유민 다수가 일본 열도로 이주하였다. 

     4세기 이후 일본에서는 세토내해를 중심으로 규슈와 기나이 지방 사이에 활발한 인구 이동이 일어났다. 그 후 야마토 정권이 안정되어 동쪽으로 세력을 확대해 감에 따라 일본 열도의 거주민은 계속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이러한 인구 이동과 함께 일본 열도 동부 지역의 개발도 진척되어 갔다.

 

기원 전후~6세기 일본 열도의 인구 이동
출처 - MiraeN 고등학교 동아시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