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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동아시아사

[동아시아사] 국가 간의 교류와 전쟁

국가 간의 교류와 전쟁 

 

썸네일 - 국가 간의 교류와 전쟁
국가 간의 교류와 전쟁

 

동아시아 국가 간의 교류

     동아시아 국가들은 초기 국가 단계 때부터 빈번하게 교류하였다. 영역을 확장하고자 주변의 나라를 통합하거나 정복하였고, 생활에 필요한 물자와 인력을 얻기 위해 자주 다른 나라를 침략하였다. 한편으로는 국력을 증대하고 군주권을 강화하고자 철기를 비롯한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중원 왕조와 흉노

     기원전 3세기 후반 진시황제는 장군 몽염에게 대군을 주어 흉노를 공격하게 하였다. 진은 흉노를 북방 초원 지대로 몰아내고 오르도스 지방을 차지하였다. 그 후 흉노의 재침입을 막기 위해 전국 시대에 여러 나라가 쌓은 장성을 연결하여 만리장성을 건설하였다.

     유방이 중원을 통일한 직후 흉노의 묵특 선우는 만리장성을 넘어 을 공격하였다. 한과 흉노의 대군이 평성에서 부딪쳤는데, 한 고조는 흉노에 포위되었다가 가까스로 포위망에서 빠져나왔다. 이후 한 고조는 흉노에 비단 등의 공물을 바치고 황실의 여자를 선우에게 시집보내는 등 굴욕적인 외교 관계를 맺었다. 한동안 흉노는 한보다 군사적 우위에 있으면서 서역과 한 사이의 중계 무역에서 큰 이익을 얻었다.

     그러나 한 무제가 즉위하면서 이러한 상황이 달라졌다. 한 무제는 기원전 133년경부터 흉노에 대한 전면전을 시작하였다. 한은 흉노에 대항하기 위해 기마병을 육성하였고, 위청과 곽거병 등 유능한 장수의 활약으로 흉노에 승리를 거두었다. 흉노는 고비 사막을 넘어 후퇴하였다. 무제는 깐수 지역에 군현을 설치하고 군대를 배치하였다. 또 장건의 서역 파견을 계기로 서역 지방과 비단길을 장악하여, 흉노가 비단길을 통해 물자를 얻는 것을 막음과 동시에 동서 교역의 주도권을 확보하였다. 

 

한의 최대 영역과 장건의 서역 행로
출처 - MiraeN 고등학교 동아시아사

 

 

 

 

만주・한반도・일본 열도의 국가와 중원 왕조

     고조선은 기원전 7세기경 산둥반도에 있던 제나라와 교역하였다. 기원전 4세기 이후에는 전국 7웅 중 하나였던 연나라와 대립하였으나, 결국 연의 공격을 받아 서쪽의 영토를 빼앗겼다. 위만의 손자 우거왕은 한반도 남부 세력과 한의 교역을 막아 중계 무역의 이익을 독점하려 하였다. 이에 팽창 정책을 추진하던 한 무제는 수군과 육군을 보내 고조선을 공격하였다. 고조선은 1년 동안 적극적으로 맞섰으나 지배 세력의 분열로 왕검성이 함락되어 멸망하였다(기원전 108). 한무제는 고조선의 옛 땅에 4개의 군을 설치하였다. 무제가 고조선을 정복한 것은 고조선이 지리적인 이점을 이용하여 한과 한반도 동쪽의 예, 남쪽의 진 사이의 무역을 중개하면서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조선이 흉노와 연합할 가능성이 있었던 것도 침공의 한 계기가 되었다. 

(위만의) 왕위가 그 아들에게 전해졌다가 다시 손자 우거에게 이르니,
한에서 망명해 온 백성이 더욱 불어났다. 또 일찍이 한에 들어가 천자를 만난 적도 없고,
진번 주변의 여러 나라가 글을 올려 천자를 뵙고자 해도 길을 막아 한과 통하지 못하게 하였다.
- 사마천, 『사기』 조선열전 -

 

 

     부여는 중원의 한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였다. 부여는 한으로부터 옥갑과 청동 거울 등을 수입하고, 말·옥·구슬·담비 가죽 등을 수출하였다. 부여의 유적에서 북방 계통의 동물무늬 장신구 등이 발굴되었는데, 이를 통해 부여가 북방의 여러 민족과 교류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부여는 농경과 함께 목축을 경제 기반으로 성장하였고, 기마 풍습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삼한 지역의 소국들은 낙랑을 비롯한 한 군현과 교역하면서 중원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삼한에서는 벼농사가 발달하였고, 특히 진한과 변한 지역은 철이 풍부하여 덩이쇠를 만들어 화폐처럼 사용하였으며 이를 낙랑, 대방 등과 일본 열도에 수출하였다.

한(변한)에서 철이 생산되는데 한, 예, 왜에서 모두 와서 가져갔다. 사고팔 때 모두 철을 사용하였으니, 마치 중국에서 돈을 사용하는 것과 같았다. 또한 그것을 낙랑과 대방의 두 군에 공급하였다.
- 『삼국지』, 위지동이전 -


     1세기경 일본 열도의 소국 중 하나는 후한 광무제에게 조공하여 ‘한위노국왕’이라는 금 도장을 받았다. 야마타이국의 여왕 히미코는 후한이 멸망한 후 위에 조공하였고, 위는 히미코에게 ‘친위왜왕’이라는 칭호와 거울 등을 하사하였다. 또한 철 수입을 위해 한반도 남부와 교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