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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한국사

[한국사] 선사 시대의 전개와 국가의 성립

선사 시대의 전개와 연맹체에 기초한 국가가 성장하다

 

만주와 한반도 지역에서 발견되는 비파형 동검은 아랫부분이 둥글며, 몸체 중앙에는 돌기부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동검은 중국에서 출토되는 동검과는 다르게 손잡이와 칼날을 각각 만들어서 후에 조립하는 방식이다. 고조선은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가로, 비파형 동검과 같은 청동기 문화를 기반으로 성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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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의 전개와 국가의 성립

 

선사 문화의 전개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약 70만 년 전인 구석기시대부터였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돌을 깨뜨려서 뗀석기를 만들었으며, 채집이나 사냥 등으로 식량을 구하였다. 그리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 이동 생활을 하고, 동굴이나 바위 그늘, 막집에 거주하였다.

     약 1만 년 전, 빙하기가 끝나고 기온이 상승하면서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었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돌을 갈아 만든 간석기와 흙을 빚어 구운 토기를 사용하였다. 신석기 시대에는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었지만, 초기에는 여전히 채집과 사냥, 물고기잡이가 식량을 구하는 중요한 방식이었다. 

     신석기인은 강이나 바닷가에 움집을 짓고, 씨족 단위로 마을을 이루어 정착 생활을 하였다. 신석기 시대까지는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발생하지 않은 평등한 사회였다. 부족은 연장자나 경험이 많은 사람이 이끌었다. 한편 이 시기에는 조개나 뼈, 뿔 등으로 다양한 예술품을 만들었으며, 종교적 관념이 생겨 자연물이나 특정 동식물을 숭배하거나 무당과 주술을 믿기도 하였다. 

     만주와 한반도를 터전으로 생활하던 우리 민족은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계열의 이주민들이 합쳐져 민족의 기틀을 이루었다. 

 

 

 

 

청동기 문화를 기반으로 성립한 고조선

     기원전 2000년 경에서 1500년 무렵 만주 지역에서 청동기 시대가 시작되었다. 청동기 시대에는 농경이 발달하면서 생산력이 커지고 마을의 규모가 늘어났다. 이에 점차 빈부의 차이가 생기고 계급이 발생하면서 군장이 등장하였다. 군장은 스스로를 하늘의 자손이라 칭하고, 청동기를 사용하여 권위를 높였다. 

     이 과정에서 우리 역사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이 건국되었다. 고조선은 정치적으로 우월한 환웅 집단이 여러 세력과 결합하여 성립하였고, '단군왕검'이라는 제정일치의 지배자가 통치하였다. 고조선은 철기 문화를 수용하면서 중국의 연과 겨룰 만큼 성장하였다. 이후 부왕과 준왕 등의 왕이 등장하여 왕위를 세습하였다. 왕 아래는 상, 대부, 장군 등의 관직을 두었다. 고조선에서는 8 조법이 있었는데, 이 중 전하는 세 가지 조항을 통해 고조선이 개인의 노동력과 사유 재산을 중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기원전 2세기 경 중국 진・한 교체기에 위만이 건너와 고조선의 준왕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기원전 194). 고조선은 철기를 본격적으로 수용하여 주변 지역을 정복하고, 한과 한반도 남부의 진국 사이에서 중계 무역을 하며 성장하였다. 

     고조선이 성장하자 위협을 느낀 중국의 한 무제는 대군을 보내 고조선을 멸망시키고(기원전 108), 고조선 일부 지역에 군현을 설치하였다. 한 군현 설치 이후 법률이 60여 조로 늘어났다. 

 

 

 

 

부여의 성장

     기원전 5세기 경부터 만주와 한반도 지역에 철기 문화가 확산되면서 사회가 크게 변화하였다. 철제 농기구 사용으로 농업 생산력이 증가하였고, 철제 무기 보급으로 집단 간 전쟁이 더욱 활발해졌다. 고조선의 문화가 확산되면서 주변 지역도 빠르게 변화하였다. 특히 고조선의 유민들이 한반도 남쪽으로 내려가 이 지역의 문화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 만주와 한반도 지역에서는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 등 여러 나라가 성장하였다. 

     만주 쏭화강 유역에 자리잡은 부여는 중국과 교류하며 발전하였고, 1세기경부터 왕호를 사용하였고, 왕 아래에 가・사자 등의 통치 세력이 존재하였다. 가축의 이름을 딴 마가, 우가, 저가, 구가를 비롯한 제가들은 사출도라 불리는 지역을 관장하며 독자적인 지배력을 행사하였다. 이들이 이끌었던 집단은 왕이 다스린 중앙과 함께 여러 부족의 연맹을 형성하였다.

 

 

 

 

옥저와 동예, 삼한의 성립

     함경도와 강원도의 해안 지역에는 옥저동예가 성립하였다. 옥저와 동예는 왕이 없었고, 읍군이나 삼로라 불린 군장이 부족을 다스렸다. 고구려의 간섭으로 정치적 성장이 늦었다.

     한편 한반도 남부에서는 마한, 변한, 진한의 삼한이 성장하였다.  삼한은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성립한 여러 소국들의 연합으로 이루어졌다. 각 소국은 신지・읍차 등의 군장이 통치하였고, 천군이라는 제사장이 소도에서 종교 의례를 주관하였다. 이처럼 삼한은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 사회였다. 철기 문화가 발달하면서 삼한 사회에서는 변화가 나타났다. 마한 지역은 백제에 통합되었고, 진한 지역에서는 사로국이 신라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변한 지역에서는 가야 연맹이 성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