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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세계사

[세계사] 대공황과 전체주의

대공황과 전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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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과 전체주의

 

대공황과 각국의 대응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은 세계 경제의 중심국으로 성장하였다. 전쟁 중에 미국은 연합국을 산대로 군수 물자를 판매하고, 전쟁 후에는 유럽 국가들의 복구를 위해 민간 자본과 차관을 제공하였다. 그러나 전후 호황 속에 과다하게 이루어진 투자와 생산이 소비로 연결되지 못하면서 불황으로 빠져들었다. 1929년 뉴욕 증권 거래소 주가가 대폭락 하면서 수많은 은행과 기업이 도산하고 실업자가 속출하였다. 미국의 경기 침체는 미국과 경제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던 유럽, 아시아 등도 타격을 받아 국제 무역이 급감하고 전 세계적으로 실업률이 치솟는 대공황으로 이어졌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공황 극복을 위해 자유방임주의 경제 원칙을 일부 포기하고, 시장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중시한 케인스의 주장을 받아들여 뉴딜 정책을 추진하였다. 정부의 지출을 늘리고 대규모 공공사업을 일으켜 구매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경기를 회복하고자 하였다.

     영국에서는 노동당이 보수당과 거국 내각을 구성하여 보호 관세를 펴는 한편, 영연방을 앞세워 블록 경제로 대공황에 대처하였다. 프랑스에서는 사회당이 중심이 되어 인민 전선을 결성하고 식민지와 본국의 관계를 긴밀히 하는 블록 경제를 추구하였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자국의 경제를 보호하는 정책을 실시하면서 세계 무역이 크게 위축되고 소비 시장은 더욱 축소되었다. 한편 국내 산업 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하거나 넓은 식민지를 갖지 못하였던 국가들은 더욱 큰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각국의 블록 경제 이미지
출처 - MiraeN 고등학교 세계사

 

 

 

 

 

전체주의의 대두

이탈리아 파시즘의 대두

     이탈리아는 제1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연합국에 비해 큰 보상을 받지 못하였다. 종전 후 물가가 폭등하고 실업자가 증가하자 사회주의 사상이 확산되면서 노동 운동과 농민 운동이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이러한 사회 혼란을 틈타 무솔리니는 파시스트당을 결성하고 민족주의 여론을 등에 업고 세력을 확장하였다. 마침내 이들은 1922년 ‘로마 진군’을 통해 정권을 장악하였다. 무솔리니는 파시스트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을 해산하여 파시스트 일당 독재 체제를 구축하고 대공황으로 경제 사정이 더욱 악화하자 국가 지상주의와 군국주의를 강화하였다.

 

 

 

 

 

  독일 나치즘과 일본 군국주의의 등장

     독일은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 책임과 배상금 부담 속에서 정치적・경제적 혼란을 거듭하였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민주적인 헌법을 바탕으로 정치를 운영하는 한편, 전쟁 배상금의 축소와 미국의 지원에 힘입어 경제를 회복해 나갔다. 그러나 대공황의 발생으로 경제 위기가 심화되자 히틀러와 나치당은 베르사유 조약 폐기, 극단적인 인종주의와 국가주의를 내세워 아리아인의 생활권을 확보하려는 공격적인 팽창 정책을 추구하여 독일 국민의 지지를 얻었다. 선거를 통해 나치당은 제1당이 되었으며 이후 히틀러는 바이마르 헌법을 무력화하고 총통이 되었다(1934). 히틀러는 국제 연맹을 탈퇴하고 독일의 재무장을 선포하여 군수 생산에 주력하는 한편, 비밀경찰인 게슈타포와 친위대(SS)를 창설하여 국민의 사생활을 통제하는 등 강력한 독재 체제를 구축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 중 경제적 호황을 누렸던 일본도 대공황의 여파로 산업 생산량이 격감하고 실업자가 속출하였다. 일본은 이러한 위기를 대외 침략을 통해 극복하고자 하여 1931년 만주 사변을 일으켜 괴뢰 국가인 만주국을 세웠다. 이에 대한 국제적 비난이 일자 국제 연맹을 탈퇴하였다(1933). 이 과정에서 군부가 쿠테타(5・15 사건)를 일으키는 등 일본의 군국주의가 더욱 강화되었다. 군부는 재벌과 손잡고 산업화와 군비 확장을 꾀하였다. 마침내 일본은 중일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하였다(난징 대학살).

 

 

 

 

  소련의 스탈린주의 독재 체제 형성

     레닌이 사망한 후(1924) 정권을 장악한 스탈린은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여 중공업 중심의 산업화와 농업 집단화를 추진하였다. 다른 국가들이 대공황으로 고전을 명치 못하고 있을 때 소련은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가혹한 집단 노동이 요구되었으며, 스탈린은 정권에 대한 비판을 금지하고 반대자들을 감금하는 거대한 수용소(굴라크)를 건설하는 등 독재 체제를 강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