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 대전과 러시아 혁명
제1차 세계 대전의 배경
19세기 후반 식민지를 둘러싼 유럽 열강의 제국주의 팽창은 곳곳에서 치열한 경쟁과 갈등을 유발하였다. 열강은 세력 확대를 위해 비밀 외교 협상과 군비 확장을 계속하였다.
독일의 수상이었던 비스마르크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이탈리아와 3국 동맹을 결성하여(1882) 유럽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고 프랑스를 고립시킴으로써 독일 제국의 안정적 발전을 도모하였다. 빌헬름 2세는 즉위 후 비스마르크를 수상직에서 해임하고 베를린-비잔티움(이스탄불)-바그다드 철도 건설(3B 정책)을 추진하는 등 팽창주의 정책을 강화하여 영국이 추진하는 콜카타-카이로-케이프타운 연결 정책(3C 정책)과 충돌하였다. 독일에 맞서 영국, 프랑스, 러시아는 3국 협상을 결성하여 3국 동맹과 대립하여 긴장 상태를 유지하였다.
제국주의 열강 간의 식민지 경쟁과 함께 발칸반도의 민족주의는 유럽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발칸반도를 장악하였던 오스만 제국이 점차 약화되면서 이 지역에서 세력을 강화하려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중심의 범게르만주의와 러시아와 슬라브계 국가들 중심의 범슬라브주의가 대립하여 전쟁이 발발하기도 하였다(발칸 전쟁).
제1차 세계 대전의 전개
1914년 세르비아계 청년 민족주의자가 보스니아의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부부를 암살한 사라예보 사건을 계기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에 선전 포고를 하자 3국 협상이 세르비아를 지원하고 3국 동맹 측이 반대편에 가담하면서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다.
초기에 독일군은 서부 전선에서 신속한 승리를 예상, 프랑스와의 단기전을 계획하고 벨기에를 침공하였다. 그러나 독일군이 마른 전투와 솜 전투에서 프랑스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면서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 이후 독일은 서부 전선에서는 프랑스와, 동부전선에서는 러시아와 대립하였다. 전선이 고착화되면서 참호전이 전개되었고 상대방의 방어선을 돌파하기 위한 양측의 대공세는 막대한 사상자를 낳았다. 한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대립하던 이탈리아가 동맹국에서 이탈하여 협상국 측(연합국)에 가담하고, 오스만 제국이 동맹국 측에 참전하면서 전쟁은 확대되었다.
미국은 외형상 중립을 표방하며 전쟁에 개입하지 않았지만, 독일이 비밀리에 멕시코와 동맹을 추진하고(치머만 전보 사건),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피해를 보는 등 미국의 안보와 이익을 위협하자, 1917년 연합국 측으로 참전하였다. 이로써 전세는 연합군에 유리하게 돌아갔다. 한편 독일과 동부 전선에서 대립하던 러시아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 독일과 단독 강화 조약(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체결하고 전선에서 이탈하였다. 이후 독일은 서부 전선에 전력을 집중하여 마지막 대공세를 펼쳤으나 실패하였고, 오스만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등 동맹국의 항복이 이어지면서 전세가 불리해졌다.
이 시기 독일 내부에서는 1918년 킬 군항 수병들의 반란을 계기로 빌헬름 2세가 퇴위하고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공화국 정부가 연합국 측과 휴전 조약을 체결하면서 제1차 세계 대전은 연합국과 동맹국 모두에게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를 남긴 채 막을 내렸다.
러시아 혁명
19세기말 러시아에서는 자유주의 사상과 사회주의 사상이 널리 보급되었고,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노동자 계급이 늘어났다. 그러나 차르의 전제 정치가 계속되었고 농업 위주의 사회에서 탈피하지 못하던 가운데 러일 전쟁에서도 밀리자 정부에 대한 불만이 높아졌다. 이에 샹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군중 시위가 발생하였는데,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피의 일요일 사건, 1905). 노동자・농민의 시위가 계속되자 니콜라이 2세는 이를 무마하기 위해서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등 시민의 자유와 두마(의회)의 입법권 보장 등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약속은 대부분 이행되지 않았고 차르의 전제 정치는 계속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협상국 측으로 참전한 러시아는 낙후한 무기와 무능한 지휘부 때문에 독일군에 패배를 거듭하였다. 군대의 사기는 떨어졌고, 국민 생활도 비참해졌다. 이에 1917년 전쟁 중지와 차르 타도를 외치는 봉기가 일어났고, 노동자・병사 소비에트가 결성되어 혁명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제정이 붕괴되고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3월 혁명).
그러나 임시 정부는 국민의 염원과 달리 전쟁을 계속하였다. 이에 반발하여 시위가 계속되자, 볼셰비키 지도자 레닌이 모든 권력의 소비에트 이양과 전쟁의 즉각 중지를 주장하여 노동자, 농민의 지지를 얻었다. 결국 레닌과 볼셰비키가 주도한 무장봉기가 일어나 임시 정부가 무너지고 소비에트 정부가 수립되었다(11월 혁명).
한편 레닌은 국제 공산당 조직인 코민테른을 조직하고, 각구의 노동 운동과 식민지 해방 운동에 인적・물적 지원을 약속하였다. 이에 각국의 여러 단체와 지식인이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이면서 사회주의가 확산되었다.
소련의 발전
소비에트 정부는 독일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체결하여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이탈하고, 토지와 주요 산업의 국유화 등 사회주의 개혁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반혁명 세력과 내전을 치르는 과정에서 전시 공산주의 정책을 펴 식량과 노동력을 징발하였다. 이에 농민층의 불만이 높아지자 레닌은 신경제 정책을 시행하여 시장 경제 요소를 일부 도입하는 등 경제를 활성화하려고 하였다. 이후 생산력을 회복하고 정권을 안정시킨 레닌은 주변 소비에트 정부를 묶어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련)을 수립하였다(1922).
레닌 사후 집권한 스탈린은 경제 발전 5개년 계획을 추진하여 중공업을 육성하고 농업 진단화 정책을 실시하는 등 사회주의 통제 경제 정책을 강화하였다. 그 결과 소련은 세계적인 공업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으나, 정치적으로는 반대파를 숙청하며 스탈린 독재 체제를 강화하였다.
'역사 > 세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계사] 전후 아시아의 민족 운동 (1) | 2024.03.26 |
---|---|
[세계사]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세계 (1) | 2024.03.25 |
[세계사] 서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민족 운동 (1) | 2024.03.23 |
[세계사]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민족운동 (3) | 2024.03.22 |
[세계사] 일본과 조선의 근대화 운동 (1) | 2024.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