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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세계사

[세계사]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세계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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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세계

 

베르사유 체제와 국제 연맹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전후 문제 처리와 평화 체제 마련을 위해 파리 강화 회의가 열렸다. 회의는 미국 대통령 윌슨이 제안한 민족 자결주의와 비밀 외교 금지 등 14개 조 평화 원칙에 기초하여 진행되었다. 연합국은 독일과 베르사유 조약을 체결하고, 다른 패전국들과도 개별적으로 강화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베르사유 체제가 성립되었다(1919). 이에 따라 유럽에서는 여러 민족이 독립 국가를 수립하였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반제국주의 운동이 추진되었다. 

     베르사유 체제는 표면적으로 전쟁 방지, 세계 평화 확립 등을 주요 목표로 하였다. 그러나 주요 결정은 승전국의 이익에 따라 내려졌으며, 패전국에는 철저한 보복과 응징이 가해졌다. 특히 독일은 막대한 배상금과 군비 감축을 요구받았고 해외의 모든 식민지를 상실하고 알자스・로렌 지방을 프랑스에 양도하였다. 이처럼 베르사유 조약은 독일에 가혹한 책임을 지움으로써 향후 독일 국민의 불만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전후 끔찍한 참화를 겪은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평화에 대한 열망이 높아졌다. 이에 윌슨의 제안에 따라 42개국이 참여한 국제 연맹이 창설되었다(1920). 국제 연맹은 군비 축소, 각국의 독립과 영토 보전, 국제 분쟁의 평화적 해결 등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제창국인 미국이 처음부터 불참하였고, 독일과 소련도 처음에는 참여가 배제되었다(이후 독일은 1926년, 소련은 1934년에 국제 연맹 가입). 또한 국제 분쟁을 억제할 무력 수단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국제 연맹은 1930년대 일본의 만주 사변이나 나치 독일의 재무장 등을 막지 못하는 등 한계를 드러내었다.

 

베르사유 체제하의 유럽 지도
출처 - 금성출판 고등학교 세계사

 

 

 

 

 

평화 구축 노력과 민주주의의 발전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평화 체제를 보완하기 위한 논의가 계속되었다. 각국은 워싱턴 회의(1921)에서 태평양과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 및 군비 감축을 논의하였고, 로카르노 조약(1925)을 통해 독일의 국제 연맹 가입과 국제 분쟁의 평화적 해결 원칙에 합의하였다. 또한 15개 국가가 국가 정책 수단으로써의 전쟁을 포기하는 켈로그-브리앙 조약을 체결하였으며(1928), 독일의 전쟁 배상금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한 도스안과 영안을 결의하였다. 1930년에는 런던 회의가 열려 해군의 군비 축소가 논의되었다. 

 

 

 

 

 

전후 유럽의 정치・사회 변화

     종전을 전후하여 유럽에서 민주주의가 크게 발전하였다. 독일에서는 혁명이 일어나 재정이 무너지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수립되었고(1919),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오스만 제국도 제정이 붕괴되고 공화정이 들어섰다. 아울러 패전국의 지배를 받던 여러 민족이 민족 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독립하여 유럽에는 많은 신생 독립국이 생겨났다. 이때 독립한 나라들은 대부분 공화정을 채택하였다.

     이와 더불어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참정권도 확대되었다. 전쟁 중 군인으로 동원되는 등 기여도가 높았던 노동자 계층의 권리가 법으로 보장되었고, 재산에 따른 선거권 제한이 폐지되었다. 전시에 군수 물자를 생산하는 등 후방에서 활약한 여성들의 권리도 높아졌다. 여성들은 이를 기회로 삼아 조직적인 운동을 벌였고, 그 결과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여성이 참정권이 인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