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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세계사

[세계사] 그리스 세계의 성립과 발전

그리스 세계의 성립과 발전 

 

썸네일 그리스 세계의 성립과 발전
그리스 세계의 성립과 발전

 

폴리스의 성립

     기원전 2,000년경 에게해에서 크레타 문명이 일어났다. 이 문명은 청동기를 바탕으로 활발한 해상 무역을 하며 발달하였다. 기원전 1,400년경에는 그리스 본토에서 남하해 온 미케네인들이 에게해를 장악하고 상무적인 미케네 문명을 발달시켰다. 그러나 미케네 문명은 기원전 1,200년경 철기를 사용한 도리스인의 침입으로 파괴되었다.

 

크레타 문명과 미케네 문명 지도
출처 - MiraeN 고등학교 세계사

 

     미케네 문명이 몰락한 이후 그리스 세계에서는 오랫동안 암흑기가 이어졌으나, 산지가 많고 평야가 적고 해안선의 굴곡이 심한 그리스반도 해안 가까이의 평지를 중심으로 촌락을 형성하였다. 기원전 10세기경부터 촌락을 방어하기 위해 높은 언덕에 성이나 요새를 쌓아 생활하였는데 이것이 폴리스(도시 국가)로 발전하였다. 그리스인은 폴리스 단위로 나뉘어 생활하였지만, 같은 언어와 종교를 공유한다는 동족 의식이 강하였다. 다른 민족과 구별하여 스스로 ‘헬레네스’라 불렀으며, 4년마다 올림피아 제전을 열어 공동체의 결속을 다졌다.

 

 

 

 

민주 정치를 발전시킨 폴리스 아테네

     아테네는 처음에는 왕정이었으나, 점차 귀족이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여 귀족정으로 바뀌었다. 기원전 7세기경부터 상공업과 무역이 발달하면서 부유해진 평민들이 중무장 보병으로 군대의 주력이 되면서 정치적 권리의 확대를 요구하였다.

     기원전 6세기 초 솔론은 귀족과 평민의 대립을 조정하여 재산 정도에 따라 시민을 4등급으로 구분하고 참정권을 차등 분배하는 개혁(금권정) 방안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솔론의 개혁은 귀족과 평민 모두의 불만을 샀고, 혼란한 상황을 틈타 페이시스트라토스와 같은 참주가 나타나 민중의 지지를 얻어 정권을 장악하였다.

     기원전 6세기 후반 클레이스테네스는 참주를 몰아내고 다양한 개혁안을 펼쳐 민주 정치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혈연 중심의 부족제를 거주지 중심의 부족제로 개편하고, 이를 바탕으로 행정을 담당하는 500인 평의회를 설치하였다. 또한 참주의 출현을 예방하기 위해 도편 추방제를 마련하였다.

     아테네 민주 정치는 기원전 5세기 페리클레스 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최고의 입법권을 행사하던 민회에는 모든 성인 남성 시민이 참석하였다. 수당 제도를 통해 가난한 시민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고, 추첨 제도를 통해 시민들이 관직과 배심원직을 맡았다. 그러나 여성, 거류 외국인, 노예에게는 참정권이 부여되지 않았다.

 

 

 

 

전사들의 폴리스 스파르타

     기원전 800년경 도리스인들이 펠로폰네소스반도 남단으로 내려와 세운 스파르타는 이웃 나라들을 정복하여 영토를 확장하였다. 스파르타에서는 왕 아래 귀족들이 정치적 실권을 잡았고, 참정권은 성인 남자 시민에게만 있었다. 정복 과정에서 강하게 저항한 자는 ‘예속 농민(헤일로타이)’으로서 토지를 경작하였고, 종속적인 지위를 감수한 자는 ‘반자유민(페리오이코이)’으로 주로 상공업을 종사하였다.

     스파르타에서는 소수의 시민이 다수의 피지배층을 다스려야 했기 때문에 군사 제도에 바탕을 둔 엄격하고 폐쇄적인 사회 제도를 유지하여 강력한 군국주의 체제가 발전하였다. 모든 성년 남자 시민은 어릴 때부터 공동 식사 등 통제된 집단생활을 하며 혹독한 군사 훈련을 받았다. 페르시아인들이 그리스를 침입했을 때 300인의 스파르타 병사들이 테르모필레에서 용맹하게 싸우다 전사한 것은 스파르타인들의 기상과 특징을 잘 보여준다.

 

 

 

 

 

페르시아 전쟁과 그리스 세계의 변화

     기원전 6세기 말 서아시아 세계를 통일한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가 지중해로 세력을 확대하면서 그리스와 충돌이 일어나 그리스・페르시아 전쟁(기원전 492~기원전 479)이 벌어졌다. 세 차례에 걸친 전쟁에서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중심이 된 그리스는 페르시아를 물리쳤다.

     전쟁 이후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의 맹주로서 강력한 해상 제국으로 발전하였으며, 이로부터 나온 재정 수입으로 아테네는 페리클레스의 지도 아래 민주 정치를 확대하고 고전 문화를 발전시켰다. 이 시기의 아테네는 성인 남자 시민이 참여하는 민회가 입법권을 가졌고 가난한 시민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공무 수당이 지급되었다. 또한 장군과 같은 특수직을 제외한 나머지 관직과 배심 원직은 추첨으로 뽑힌 시민이 공무를 담당하였다. 그러나 여성, 거류 외국인, 노예에게는 참정권이 부여되지 않았다.

     한편 델로스 동맹이 아테네의 이익을 우선하는 동맹으로 변질하자 이에 불만을 가진 폴리스들이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맺고, 아테네에 맞서 전쟁을 일으켰다(펠로폰네소스 전쟁, 기원전 431~기원전 404). 전쟁 중에 페리클레스가 병사하고 아테네의 민주 정치가 무너지면서 스파르타가 승리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테베가 스파르타를 무너뜨렸으며, 혼란에 빠진 그리스 세계는 결국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에게 정복되었다(기원전 338).

 

페르시아전쟁 지도
출처 - MiraeN 고등학교 세계사

 

 

 

 

 

그리스의 문화

     그리스인은 폴리스의 자유로운 시민 생활에 바탕을 둔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그리스 문화는 합리적이며 인간 중심적인 특징을 보여주었다. 그리스인은 다신교를 믿었으며 신들도 인간의 모습과 감정을 가진 존재로 여겼다. 이러한 신들의 이야기는 문학과 예술의 소재가 되었다.

     그리스인의 합리적인 태도는 철학을 발전시켰다. 처음에는 만물의 근원에 대해 연구하는 자연 철학이 발전하였으나, 기원전 5세기경에는 소피스트가 나타나 철학의 관심을 인간과 사회로 돌렸다. 수사학과 변론을 가르치는 소피스트는 진리의 상대성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소피스트의 철학이 지나친 궤변으로 흐르자, 이에 맞서 소크라테스는 진리의 보편성과 절대성을 주장하였다. 그 후 플라톤은 이상 국가론을 제시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가르치며 여러 학문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서양 철학과 학문의 기초를 닦았다.

     역사에서는 헤로도토스가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을 다룬 『역사』를 저술하여 ‘역사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투키디데스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다룬 『역사』를 집필하여 역사학의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문학에서는 트로이 전쟁을 소재로 전쟁 영웅과 신의 세계를 다룬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디세이아』와 같은 서사시가 발전하였다. 기원전 5세기에는 연극이 널리 유행하면서 아이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와 같은 비극 작가와 아리스토파네스와 같은 희극 작가가 이름을 떨쳤다.

     건축과 조각에서는 조화와 균형을 갖춘 아름다움을 추구하여 각종 건축물과 조각품을 남겼다. 특히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은 그리스를 대표하는 유산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