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침략과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 2
제국주의 열강의 중국 침략과 의화단 운동
청은 시모노세키 조약에 따라 일본에 지급할 배상금을 서구 열강으로부터 차관을 들여와 마련하였다. 서구 열강은 차관을 제공하는 대신 청에 여러 이권을 요구하였다. 청의 각 항구에 조차지를 설정하고 철도 부설권, 광산 채굴권 등을 차지하였다. 일본도 서구 열강과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세력권을 넓혀 나갔다. 그 결과 청은 영토 주권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청에서는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깊어졌다.
서구 열강과 일본의 이권 침탈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크리스트교에 대한 중국인의 반감도 커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 왕조를 도와 서양 세력을 몰아내자는 의화단 운동이 일어났다. 의화단은 교회와 철도를 파괴하고 외국 공사관까지 공격하였다. 청 정부도 ‘부청멸양’을 내세운 의화단을 이용하여 서구 열강에 대항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서구 열강과 일본은 연합군을 조직하여 의화단 진압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베이징을 점령하였다. 청 정부는 연합군과 신축 조약(베이징 의정서)을 체결하여 배상금을 지급하고 외국 군대의 베이징 주둔을 허용하였다(1901).
한반도와 만주를 둘러싼 러일의 대립
삼국 간섭 이후 한반도와 만주 지배를 두고 러시아와 일본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러시아는 청으로부터 만주 철도 부설권을 얻고 뤼순과 다롄을 조차 하였으며, 조선에 친러 정권이 수립되도록 지원하였다.
러시아가 의화단 운동을 계기로 만주에 군대를 주둔하고, 일본이 영국과 동맹(제1차 영·일 동맹)을 맺어 러시아를 견제하면서 두 나라의 갈등은 증폭되었다. 결국 1904년 일본 함대가 제물포와 뤼순에서 러시아 함대를 공격하면서 러·일 전쟁이 발발하였다.
일본은 한・일 의정서로 대한 제국의 중립 선언을 무력화하여 한반도를 군사 기지로 삼았다. 그리고 러시아의 만주 독점에 반대한 영국과 미국의 지원을 받았다. 봉천 전투와 동해 해전의 승리로 전쟁은 일본에 유리하게 흘러갔다. 하지만 일본은 러시아가 항복할 때까지 전쟁을 끌고 갈 힘이없었다. 러시아도 국내 혁명으로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하기 어려웠다. 결국 두 나라는 미국의 중재로 전쟁을 끝내기로 합의하고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하였다(1905).
이 조약을 통해 일본은 러시아로부터 조선에서의 우월적인 지위를 인정받고 뤼순과 다롄의 조차권과 창춘 이남의 철도 부설권도 넘겨받았다. 또 북위 50도 이남의 사할린섬도 차지하였다. 청에서는 '전제(러시아)에 대한 입헌(일본)의 승리'라고 하며 일본의 승리를 긍정적으로 보는 경향도 있었지만, 일본이 남만주의 이권을 차지하였기 때문에 이에 대한 비판도 커졌다. 일본은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 7.), 제2차 영・일 동맹(1905. 8.),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미국・영국・러시아로부터 한반도의 지배권과 만주 진출의 기반을 마련하고,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제국주의 열강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일본의 한국 병합
일본은 러·일 전쟁 도발과 함께 대한 제국에 대한 침략을 본격화하였다. 일본군이 대한 제국에서 임의로 군용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일 의정서 체결을 강요하였고(1904), 곧이어 제1차 한·일 협약을 체결하여 재정과 외교 고문을 파견해 대한 제국의 내정 간섭을 본격화하였다. 1905년에는 독도를 불법으로 자국 영토에 편입하고, 외교권을 박탈하는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대한 제국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들었다.
을사조약(일부)
제2조 일본 정부는 한국과 타국 간에 현존하는 조약을 완전히 실행하는 책임을 맡고, 한국 정부는 금후에 일본 정부의 중재를 거치지 아니하고 국제적 성격의 어떠한 조약이나 약속을 맺지 않을 것을 서로 약속한다.
제3조 일본 정부는 그 대표자로 하여금 한국 황제 폐하의 밑에 1명의 통감을 두되, 통감은 오로지 외교에 관한 사항을 관리하기 위해 경성에 주재하고 친히 한국 황제 폐하를 알현할 권리를 가진다.
- 『고종실록』 -
대한 제국은 일본의 침략에 다양한 방법으로 저항하였다. 지식인은 애국 계몽 운동을 벌였고, 양반 유생과 농민은 의병을 일으켰다. 고종도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여 일본의 침략상과 조약의 불법성을 국제 사회에 알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대한 제국 군대를 해산시킨 후 1910년 8월 대한 제국의 국권을 빼앗았다. 이로써 대한 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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