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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동아시아사

[동아시아사] 제국주의 침략과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 1

제국주의 침략과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 1 

 

썸네일 - 제국주의 침략과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
제국주의 침략과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

 

청・일의 대립과 동학 농민 운동

     1880년대 들어 조선을 둘러싼 청과 일본의 경쟁이 본격화되었다. 청은 조선에서 일어난 임오군란을 진압한 후 조선 내정에 직접 개입하였다. 일본은 갑신정변을 지원하고 청과의 전쟁에 대비해 군사력 증강에 나섰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났다. 1894년 전봉준 등이 이끄는 동학 농민군은 제폭구민과 보국안민을 내세우며 전라도 일대를 장악하였다. 동학 농민군 진압에 실패한 조선 정부는 청에 파병을 요청하였고, 청이 출병하자 톈진 조약에 따라 일본도 공사관과 거류민 보호를 내세워 조선에 파병하였다. 청·일 양국 군대의 개입에 위기감을 느낀 동학 농민군은 조선 정부와 전주 화약을 맺고 해산한 후 전라도 일대에서 개혁을 추진하였다.

 

동학 농민 혁명 기념탑(한국 정읍)
출처 - MiraeN 고등학교 동아시아사

 

     전주 화약으로 청·일 양군은 더 이상 조선에 주둔할 명분이 없어졌다. 하지만 일본은 조선의 내정 개혁을 명분으로 철군을 거부하고, 경복궁을 점령하여 조선에 새로운 내각을 구성하였다. 이에 동학 농민군은 일본을 몰아내기 위해 다시 봉기하였지만 우세한 화력을 앞세운 일본군과 조선 정부군에 패하고 말았다. 이후 전봉준 등 지도부가 체포되면서 동학 농민 운동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청・일 전쟁과 동아시아 국제 질서의 변화

     경복궁을 점령한 일본은 아산만의 풍도 앞바다에서 청의 군함을 공격하였다(청·일 전쟁, 1894). 일본군은 평양 전투와 황해 해전에서 청군을 격파하고 랴오둥반도와 산둥반도 일부를 점령하였다.

     일본의 압도적 우위로 전쟁이 끝나면서 일본은 청과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하였다(1895). 청은 조선에 대한 종주권 포기, 타이완과 랴오둥반도 할양, 거액의 전쟁 배상금 지급 등을 약속하였다.

시모노세키 조약
제1조 청국은 조선국이 완전무결한 독립 자주국임을 확인한다.
제2조 청국은 아래에 기록한 토지의 주권 및 해당 지방에 대한 성루, 병기 제조소와 관유물을 영원히 일본국에 할양한다.
1. 봉천(선양) 남부의 땅
2. 타이완 전체 및 그 부속 제 도서
제4조 청국은 군비 배상금으로서 고평은(해관에서 기준으로 삼는 은) 2억 냥을 일본국에 지급할 것을 약속한다.
- 『중외구약장회편』 -

 

     한편 청·일 전쟁을 계기로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국제 질서가 해체되고 국제법에 따른 새로운 질서가 모색되었다. 대한 제국과 청은 대등한 입장에서 한·청 수호 통상 조약(1899)을 체결하여 새로운 외교 관계를 형성하였고, 일본은 청을 제치고 동아시아의 새로운 강국으로 떠올랐다.

 

청일 전쟁의 전개
출처 - MiraeN 고등학교 동아시아사

 

 

 

 

일본의 제국주의화

     19세기는 월등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앞세운 서양 열강이 식민지 건설을 위해 대외 팽창을 시도한 제국주의 시대였다. 일본도 청·일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군사력을 대내외에 과시하며 제국주의 국가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러시아가 일본의 세력 팽창을 견제하고 나섰다. 러시아는 독일, 프랑스와 함께 랴오둥반도를 청에 반환하도록 일본에 압력을 행사하였고, 일본은 이에 굴복하였다(삼국 간섭, 1895). 이를 계기로 러시아와 일본은 한반도와 만주를 둘러싸고 본격적으로 대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