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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한국사

[국가기념일] 3·8민주의거 기념일

3·8민주의거(三八民主義擧)란?

     3·8 민주의거(三八民主義擧)는 1960년 3월 8일부터 3월 10일까지 충청남도 대전 지역 고등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이승만 정부와 자유당의 독재와 불법・부정선거에 항거하여 일어난 민주화운동입니다.

 

썸네일 3·8 민주의거(三八民主義擧)
3·8 민주의거 기념일

 

발단

     3·8민주의거는 1960년 3월 8일 대전공설운동장에서 열리는 장면 민주당 부통령 후보 선거연설회의 참여를 막는 경찰에 항의하여 일어났습니다.

     집권 여당인 자유당은 1960년 3월 15일 실시되는 대한민국 제4대 정 · 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기 위하여 야당인 민주당의 선거 유세 방해를 비롯하여 각종 부정선거를 자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유당의 선거 유세 및 정치 행사에는 학생들을 직 · 간접적으로 동원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들은 학원의 정치 개입의 반대를 주장하며 부정선거 반대 운동을 펼치기 시작하였는데,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부정선거 반대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대구의 2 · 28민주운동은 전국의 학생들에게 큰 자극제가 되어, 대전 지역의 고등학생들도 3월 8일 오후에 개최되는 민주당 유세장인 대전공설운동장에서 집결하여 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였습니다.

     3월 8일 대전 선거 유세에는 민주당 부통령 후보인 장면뿐만 아니라 민주당 대표인 박순천 등 당내 유명 인사들이 다수 참여할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러자 대전교육청에서는 각 학교에 학생들이 유세장에 나오지 않게 훈육하라는 공문을 여러 차례 보냈으며, 각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민주당 유세의 참여를 막았습니다.

 

 

 

 

경과

     3월 8일 민주당 부통령 후보인 장면의 선거유세에 맞추어 대전고등학교 1,000여 명의 학생이 경찰의 저지망을 뚫고 독재 타도와 학원의 자유를 외치며 시민들의 환호 속에 격렬하게 시위를 전개하였습니다.

     학생들은 유세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무장경찰의 강제 진압에 직면하였습니다. 충청남도경찰청과 대전경찰서 경찰들은 대전 지역 고등학교 학생들의 시위 행렬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였습니다. 학생들은 머리와 팔, 다리 등에 부상을 입어 피를 흘리는 등 상황은 참혹하였습니다. 학생들은 ‘학생을 정치 도구화하지 말라’, ‘학원에 자유를 달라’, ‘이승만 독재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하였습니다. 3월 9일 대전고등학교 학생 및 대전상업고등학교 학생들이 모임을 갖고 다시 시위를 계획하였으나 정보가 누설되어 학생들이 경찰에 연행, 구속되었습니다. 3월 10일에는 대전상업고등학교 학생들이 '학원의 자유를 달라', '친구를 빨리 내놓으라' 등의 구속 학생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전개하였습니다. 이 과정을 통합하여 3·8민주의거로 규정하였습니다.

     시위가 진행되면서 100여 명의 학생이 연행, 구속되어 고초를 겪었으며 수많은 학생이 경찰의 방망이로 맞아 부상을 입어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지는 학생도 많았습니다.

     대전의 3·8민주의거는 이후 마산의 3·15의거와 4·19혁명으로 이어져 이승만 자유당 정권에 저항하는 민주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의의 및 평가

     삼팔민주의거는 한동안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하다가 2000년대를 전후하여 3·8의거 주역들의 노력으로 그 역사적 의미가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삼팔민주의거는 1960년 3월 이승만 자유당 독재 권력에 맞서 대전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일으킨 충청 지역 최초의 학생운동이며 지역민주화운동의 효시로 평가받아, 2009년 대전시의회는 「3.8민주의거 기념조례」를 제정하였습니다. 그리고 2018년 삼팔민주의거는 4·19혁명의 기폭제 역할을 인정받아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렇게 3·8민주의거는 대구의 2·28민주운동, 마산의 3·15의거, 4·19혁명과 함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공헌했음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결의문

     1960년 3월 8일, 대전고등학교 학생들이 의거를 앞두고 작성하여 연설한 결의문으로 전문을 포함해 7개 조 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정의와 진리를 사랑하는 우리들 대고 건아는 최근 일어나는 여러 가지 우리의 뜻에 배치되는 충남도 당국과 학교의 처사에 대하여 그 잘못을 깨닫고 조속히 학원의 자유보장과 대고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도록 강력한 시정책을 강구할 것을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학원의 정치도구화를 배격한다.
자유로운 학생동태를 감시 말라.
서울신문 강제구독을 단호히 배격한다.
진리를 탐구하는 신성한 학원에서 여하한 사회적 세력의 침투를 용납할 수 없다.
우리의 거사는 오로지 정의감과 자발적 의사에서 나온 것임을 밝힌다.
오늘을 기하여 거행함은 다만 학생들의 사기가 왕성한 때문이다.

 

     결의문 작성자인 홍석곤(대고 40회)은 2012년 10월 4·19 유공자 포상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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