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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한국사

[한국사] 전시 동원 체제와 병참 기지화 정책

전시 동원 체제와 병참 기지화 정책 

1944년 일본 탄광 회사에서 한국인에게 발행한 징용 고지서에는 징용된 사람의 이름과 주소, 징용 장소, 징용되어 종사해야 하는 업무 등이 적혀있다. 일제는 침략 전쟁을 확대하면서 한국인들을 탄광, 군수품 공장, 비행장 공사장 등지로 동원하기 위하여 징용을 실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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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동원 체제와 병참 기지화 정책

 

병참 기지화 정책

     일제는 대공황을 겪으면서 경제 위기가 깊어지자 일본, 한국, 만주를 연결하는 경제 블록을 조성하여 대공황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이에 일제는 1931년 만주 사변을 일으켜 대륙 침략을 감행하였고, 이듬해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웠다.  일제는 만주 점령 이후 만주를 농업・원료 지대로 한국을 중화학 공업 지대로 설정하고 조선 공업화 정책을 실시하여 농업에서 공업・광업 분야로 수탈 대상을 확대하였다. 이는 한국의 값싼 노동력과 자원을 효율적으로 수탈하고, 한반도를 침략 전쟁에 필요한 군수 물자를 공급하는 병참 기지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1930년대에 일본의 독점 자본이 한국의 중화학 공업과 광업 부분에 집중적으로 침투하면서 식민지 공업화가 빠르게 진진되었으며, 석탄과 철 등의 지하자원이 풍부한 북부 지방을 중심으로 발전소와 대규모 공장이 세워졌다. 또한 일제는 대공황으로 어려움을 겪던 일본 방직업자에게 원료를 공급하기 위해 산미 증식 계획을 중단하고, 남쪽에서는 면화 재배를, 북쪽에서는 양을 키우도록 강요하는 남면북양 정책을 실시하였다.

     만주 침략 이후에도 경제적 어려움이 계속되자 일제는 중국 본토를 침략하여 중・일 전쟁을 일으켰다(1937). 일제는 중・일 전쟁 이후 침략적 전쟁을 확대하면서 한국의 산업은 군수 산업 위주로 개편되었고, 소비재 생산은 위축되었다. 일제의 식민지 공업화로 산업 간 불균형이 깊어졌으며, 지역에 따른 공업 격차도 심화되었다.

 

 

 

 

국가 총동원 체제

강제 징병

     중・일 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1938년에 국가 총동원법을 제정하고 본격적으로 인력과 물자 수탈에 나섰다. 무엇보다 전투 병력이 필요했던 일제는 한국인을 통제하고 침략 전쟁에 동원하고자 국민정신 총동원 운동을 펼쳤다. 1938년에 지원병제를 실시하여 한국인을 침략 전쟁에 동원하였고, 태평양 전쟁으로 전선이 확대되자, 일제는 1943년에 학도 지원병제를 실시하여 많은 학생까지 전쟁터로 끌고 갔다. 일제는 '지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자발성을 강조하였으나, 실제로는 강압이나 회유로 한국인을 전쟁에 동원하였다.

     일제는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44년에는 징병제를 실시하여 전쟁이 끝날 때까지 한국 청년 수십 만 명이 전쟁터로 끌려갔다. 이광수, 최남선 등 친일 지식인들은 한국인이 전쟁에 참가하는 것이 자치권이나 참정권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면서 한국인의 전쟁 참가를 선동하였다. 

 

 

 

 

강제 징용

     일제는 전투 병력뿐만 아니라 노동력도 강제로 동원하였다. 1939년에 국민 징용령을 제정하여 광산, 비행장, 군수 공장 등지로 청장년들을 끌고 가 강제 노동을 시켰다.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에는 국민 징용령을 다시 개정하여 한국인을 본격적으로 강제 동원하였다. 이 시기 강제 징용된 이들이 수는 수백만 명을 헤아렸다. 강제 동원된 사람들은 주로 농민 출신으로, 한반도뿐 아니라 일본, 사할린, 동남아시아 등의 광산, 건설 현장, 군수 공장 등에 끌려가서 혹독한 노동에 시달렸다. 

     일제는 남성이 강제 동원되어 일할 사람이 부족해지자 여자 근로 정신대를 조직하여 여성의 노동력도 수탈하였다. 법적 근거 없이 시행되던 여성 노동력 동원은 전쟁 막바지은 1944년에 여자 정신 근로령이 제정되며 더욱 본격화 되었다.

     동원 대상은 원칙적으로 이미 노동을 하고 있는 사람을 제외한 도시 거주자, 국민학교 고학년 이상의 학력을 가진 12세 이상 40세 미만의 여성이었다. 동원된 사람들은 한국과 일본의 군수 공장 등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으며, 강제 노역을 하거나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등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한편, 일제는 '군 위안소'를 설치하여 패전 때까지 한국을 비롯한 식민지와 점령지의 10대 여성을 비롯한 젊은 여성들을 중국과 남양 군도 등지의 전쟁 지역으로 끌고 가 일본군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동원하여 끔찍한 삶을 강요하였다. 피해자들은 구타나 고문, 성폭력 등으로 평생 치유하기 힘든 고통 속에 살아야 했고 일부는 반인륜적 범죄를 은폐하려는 일본군에게 학살당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