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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세계사

[세계사] 인도 문명

인도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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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문명

 

인도 문명

     기원전 2500년경 인더스강 상류 펀자브 지방의 비옥한 평야지대에서 인더스 문명이 발생하였다. 이 지역은 기름진 평야 지대로, 서아시아 일대와 연결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인더스 문명의 대표 유적인 하라파와 모헨조다로는 이 도시들이 계획적으로 건설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들 도시는 벽돌로 쌓은 성벽을 두르고 망루를 만들고 반듯하게 도로를 포장하였으며, 배수 시설, 공중목욕탕, 광장, 창고 등을 갖추었다. 왕궁이나 신전은 보이지 않았지만, 규모가 큰 목욕탕이 곡물 창고, 회의장 건물과 함께 도시 중심부에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서 종교의식을 거행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주민들은 청동기그림 문자를 사용하였고 밀과 보리를 재배하였으며 물소, 염소, 코끼리 등을 길렀다. 그리고 이들이 생산한 금, 은 세공품이나 도자기 등은 동물이 끄는 수레로 주변 지역에 유통되었고, 하라파와 모헨조다로는 서로 물길로 연결되어 왕래하였으며, 선박을 만들어 멀리 메소포타미아 지방과도 교역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사실은 유적에서 발견된 인장과 토기 등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번영하던 인더스 문명은 기원전 1800년경부터 홍수, 수로의 변경 등으로 인해 서서히 쇠퇴하였다.

 

 

 

 

 

 

 

아리아인의 이동

     기원전 1500년경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아리아인은 힌두쿠시산맥을 넘어 북인도로 남하하였다. 이들은 펀자브 지방에 정착하였는데 오늘날 인도 인구의 다수를 차지한다. 점차 동쪽으로 이동하여 기원전 1000년경에는 갠지스강 유역까지 진출하였 고, 인더스 문명의 담당자였던 드라비다인을 정복하였다. 철제 농기구를 사용하여 토지를 개간하고 곡식을 재배하면서 점차 국가의 형태를 갖추어 갔다.

     정복 전쟁이 잦아지면서 사제나 무사 신분이 농업, 상업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비해 큰 힘을 갖게 되었고, 정복당한 원주민들은 노예가 되었다. 아리아인은 자신을 ‘고귀한 신분의 사람’이라 자부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고 원주민을 지배하기 위한 폐쇄적이고 엄격한 신분 제도인 카스트(바르나)제를 확립하였다. 카스트제에서 는 타고난 혈통으로 결정된 신분에 따라 개인의 사회적 지위와 직업이 정해지고 세습되었다.

     지배 계급 브라만은 자신의 특권을 유지하고자 태양, 물, 불과 같은 자연 현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브라만교를 성립시켰다. 또한 자연신에 관한 찬양과 제사 의식을 정리하여 베다를 만들었는데, 이는 브라만교의 경전이 되었다. 브라만교는 훗날 힌두교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카스트제도

 

카스트 제도

     인도에서는 카스트를 산스크리트어로 '색'이라는 뜻의 '바르나'라고 불렀는데, 이는 아리아인과 원주민의 피부색이 다른 데서 유래하였다. 카스트제는 혈통으로 결정된 신분에 따라 개인의 사회적 지위와 생활 방식까지 규제하였다. 인도 경전 [베다]에는 브라만(제사장), 크샤트리아(왕족, 귀족), 바이샤(평민), 수드라(천민; 정복당한 민족, 주로 노예)의 네 신분이 설명되어 있어 아리아인들은 [베다]를 근거로 카스트제를 합리화하였다.

     카스트란 포르투갈어로 '혈통' 또는 '신분'을 의미하며, 19세기 영국인들이 인도를 식민 지배하면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영국은 브라만을 중심으로 카스트제를 파악하였다.

 

 

 

 

 

카스트의 소임

     브라만에게는 베다를 가르치는 일과 배우는 일, 자신들과 남을 위해 제사 지내는 일, 선물을 주고받는 일을 정해 주었다. 크샤트리아에게는 백성을 보호하고 선물을 바치며, 제사를 지내고 베다를 공부하며, 감각적 쾌락에 집착하는 것을 삼가도록 명하였다. 바이샤에게는 가축을 돌보고 선물을 바치며, 제사를 지내고 베다를 공부하며, 장사를 하고 돈을 빌려주며 땅을 경작하도록 명하였다. 수드라에게는 오직 한 가지 직업만을 정해 주었으니, 곧 위의 세 계급을 겸손히 섬기는 일이다. -마누 법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