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발생_메소포타미아 문명
문명의 발생
‘신석기 혁명’에서 시작된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기원전 3000년경 전후에는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사이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최초의 문명이 탄생하였다. 이후 이집트의 나일강, 인도의 인더스강, 중국의 황허강 유역에서도 문명이 등장하였다.
큰 강 유역인 이들 지역은 기후가 따뜻하고 수량이 풍부하여 농경에 적합하였다. 인구 부양을 위해 서는 넓은 농토가 필요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강에서 물을 끌어들여 새로운 농토를 만들었다. 또한 홍수로 강이 범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제방을 쌓거나 농경지에 물을 공급하는 관개수로를 만드는 등 대규모 치수 사업을 전개하였다. 농경지가 확대되고 생산량이 증가하여 잉여 생산물이 발생하자 서로 물자를 교류하며 부유해졌다. 이들은 외부 침입에 대비하여 성벽을 쌓았는데, 이로써 도시가 성립하였다.
생산력의 발달로 사유 재산이 발생하였고, 도시의 지배층은 비옥한 땅을 차지하기 위해 정복 전쟁을 벌이며 세력을 확대하였고, 주변 지역을 통합하면서 국가를 성립하였다. 청동기의 등장으로 정복 활동이 활발 해지면서 계급 분화가 촉진되었다. 지배 계급은 신에게 제사 지내고 조세를 징수하였으며, 이를 기록하기 위해 문자를 발명함으로써 인류는 역사 시대에 들어가고 문명을 일구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있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토지가 비옥하여 농업 생산력이 높았고, 지형이 개방적이어서 일찍부터 교역이 활발하였다. 이러한 바탕 위에 기원전 3500년경 수메르인이 우르, 라가시 등의 도시 국가를 세우고 문명을 일으켰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불규칙하게 강이 범람하여 물을 다스리는 일이 중요하였다. 왕은 많은 사람을 동원하여 치수 관개 사업을 총괄하면서 신의 대리자로서 신권 정치를 행하였다. 전사와 신관은 지배층을 형성하였고 평민과 노예는 피지배층으로서 부역과 공납의 의무를 져야 했다.
잦은 홍수와 외침을 겪으면서 수메르인은 내세보다는 현세의 문제를 중요시하였다. 이러한 내세관은 「길가메시 서사시」에 잘 나타나 있다. 수메르인은 다신교를 믿어 지구라트라는 신전을 세우고 도시 국가마다 다른 수호신을 섬겼다. 또한 천체를 관측하는 과정에서 천체의 운행을 보고 운명을 점치는 점성술을 발전시켰다. 천문학이 발전하여 태음력과 60진법이 고안되었다. 점토판에 쐐기문자로 기록을 남겼는데, 이 문자는 서아시아 지역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러나 수메르인의 국가는 잦은 이민족의 침입으로 오래가지 못하고 아카드인에게 정복당하였다. 이어서 아무르인이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하였다. 민족은 달랐지만, 수메르인의 문화는 아카드인과 아무르인에 의해 계승·발전되었다. 특히 아무르인이 세운 바빌로니아 왕국은 기원전 18세기 함무라비 왕 시대에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통일하고 대외 확장을 꾀하여 영토를 크게 넓히는 한편, 지방관을 파견하고 도로와 운하를 건설하는 등 국내 안정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수메르의 옛 법을 집대성하여 함무라비 법전을 편찬하는 등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바빌로니아 왕국도 기원전 1500 년경 히타이트인의 침입을 받아 멸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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