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세계사

[세계사] 이슬람 세계의 형성과 발전

이슬람 세계의 형성과 발전 

 

썸네일 이슬람 세계의 형성과 발전
이슬람 세계의 형성과 발전

 

이슬람교의 성립

     아라비아반도는 대부분 사막으로 덮여 있어 아랍인은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농업과 유목에 종사하며 오랫동안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부족 단위로 생활하였다. 이 시기 아라비아반도는 동서 교역로에서 벗어난 변두리 지역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6세기경 사산 왕조 페르시아가 동서 교통의 중심지를 차지하고 서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해 나감에 따라 비잔티움 제국과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두 제국 간의 빈번한 충돌 탓에 인도와 중국에서 이란과 시리아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기존의 동서 교역로가 차단되자 기존의 교역로를 대신하여 팔레스타인과 이집트 방면에서 홍해를 거쳐 인도양에 이르는 노선으로 주요 무역로가 바뀌었다. 그 결과 아라비아반도의 홍해 연안 도시들이 교통의 요지로 부상하면서 메카, 메디나 등도 상업 도시로 번성하였다. 그러나 교역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갈수록 일부 귀족만 부를 독점하여 일반 민중은 빈곤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며, 이권이나 대상로를 확보하기 위한 부족 간의 대립이 심해지고, 부족마다 다른 신을 섬겨 부족 간의 전쟁도 끊이지 않는 등 부정적인 결과가 초래되었다.

 

6세기경 교역로의 변화 지도
출처 - MiraeN 고등학교 세계사

 

 

     이 무렵 메카의 상인인 무함마드(570~632)가 유대교와 크리스트교와 영향을 받아 유일신 알라를 섬기는 이슬람교를 창시하였다. 당시 사회의 타락과 혼란에 회의하던 무함마드는 오랜 명상 생활 끝에 알라의 계시를 받게 되었다. 그는 메카에 만연해 있던 다신교를 부정하고, 우상 숭배를 철저히 배격, ‘유일신’ 알라에게 절대복종하라고 외쳤다. 또한 신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한 존재라고 강조하면서 혈연과 인종, 신분을 초월한 보편적 종교 사상을 전파하여 빈부 차로 고통받던 민중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무함마드의 이슬람 포교 활동은 다신교를 믿고, 메카로 순례 온 사람들을 상대로 돈을 벌던 메카의 상인들과 보수적인 귀족층으로부터 온갖 박해를 받았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무함마드는 622년 추종자들과 함께 마카를 떠나 메디나 이주하였다(헤지라:이슬람력의 기원). 메디나에서 이슬람 공동체를 만들어 교세를 확장한 무함마드는 여러 차례 전투를 거쳐 630년 메카를 탈환하고 이슬람 전파와 세력 확장을 목표로 정복 전쟁을 벌여 아라비아반도 대부분을 통일하였다.

 

 

 

 

이슬람 제국의 성립과 발전

정통 칼리프 시대

     무함마드가 사망한 후 이슬람 공동체는 정치·종교의 지도자인 칼리프를 선출 하였다. 1대부터 4대까지는 칼리프가 선출되었는데, 이 시기를 이슬람의 가르침에 충실한 ‘정통 칼리프 시대’라고 한다. 이 시기에 이슬람 세력은 교세를 확장하여 비잔티움 제국의 군대를 물리치고 시리아와 이집트를 정복하였으며, 사산 왕조 페르시아까지 멸망시키는 등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이 과정에서 칼리프 선출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으로 혼란한 상황에서 제4대 칼리프 알리가 살해되었다. 이후 시리아 총독 무아위야가 칼리프가 되어 우마이야 가문이 칼리프를 세습하도록 하여 우마이야 왕조를 열었다(661). 그는 그의 아들이 칼리프 자리를 세습하도록 하였고, 이 과정에서 이슬람 세계는 우마이야 왕조의 정통성을 두고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어 대립하였다.

 

 우마이야 왕조의 성장과 한계

     우마이야 왕조는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삼고 정복 활동을 계속하여 동쪽으로는 인더스강 유역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북아프리카를 거쳐 이베리아 반도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 이로써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세 대륙에 걸친 대제국이 성립하였다.

     우마이야 왕조가 광활한 영토를 지배하기 위해 제국의 각지로 파견한 아랍인들은 그 지역의 지배층을 형성하였다. 지배층을 차지한 아랍인은 아랍어를 공용어로 하고 화폐를 통일하는 등 통일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우마이야 왕조는 신자 간의 차별을 금했던 이슬람 교리와는 달리 아랍인을 우대하여 다른 아랍 세력과 비아랍인의 불만을 샀고, 시아파도 우마이야 왕조를 부정하였다. 결국 이러한 불만 세력과 시아파의 도움을 받은 아바스 가문이 우마이야 왕조를 무너뜨리고 아바스 왕조를 세웠다(750).

 

 

 

이슬람 제국의 변천

 아바스 왕조

     아바스 왕조는 새로운 수도로 바그다드를 건설하였으며, 오늘날 이라크 지역을 중심으로 이슬람 제국을 건설하였다. 아바스 왕조는 아랍인의 특권을 폐지하고 비아랍인도 능력에 따라 군인이나 관료로 등용하고 세금 제도에서도 차별을 없앰으로써 민족과 인종을 초월한 범이슬람 제국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당과의 탈라스 전투에서 승리하고 동서 교역로를 장악하여 수도 바그다드는 동서 무역의 중심지로 번영하였고, 국제적인 문화가 발달하였다. 특히, 수많은 학교와 도서관이 세워진 수도 바그다드로 이슬람 세계 각지에서 온 학자들이 모이면서 이슬람 과학은 10세기경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였다.

     그러나 아바스 왕조는 정치적 내분과 지방 세력의 성장 등으로 넓은 영토를 다스리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고 주변 이민족의 침입으로 9세기 중엽부터 급격하게 쇠퇴하였다. 결국 아바스 왕조는 정치적 실권을 잃고 칼리프의 명맥만 유지하다가, 13세기에 몽골 세력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였다.

 

이슬람 제국의 발전 지도
출처 - 금성출판사 고등학교 세계사

 

 

 

 

 

 이슬람 세계

     한편 멸망한 우마이야 왕조의 일파는 아바스 가문을 피해 이베리아반도로 탈출하였고, 우마이야 가문의 왕자가 756년 지지 세력을 모아 코르도바를 수도로 후우마이야 왕조를 세웠다(756). 후우마이야 왕조는 지중해 무역을 장악하여 경제적 번영을 누렸으며, 학문과 문예를 장려하였다. 또한 이슬람, 비잔티움, 그리스 문화가 한데 어우러진 높은 수준의 문화를 이룩하여 수도인 코르도바는 이베리아반도 최대의 경제적·문화적 중심 도시로 성장하였다. 이 무렵 발달한 이슬람의 학문과 과학은 에스파냐와 유럽의 여러 나라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후우마이야 왕조는 11세기에 들어서면서 국력이 쇠퇴하고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 무너지고, 이후 이베리아반도에는 다수의 작은 이슬람 국가들이 수립되었다.

     10세기 초에는 시아파가 북아프리카에 파티마 왕조를 세우고 카이로 천도를 단행하였다. 파티마 왕조가 아바스 왕조의 권위를 부정하고 칼리프를
칭하자 후우마이야 왕조도 칼리프를 칭하면서 한동안 이슬람 세계에는 3명의 칼리프가 병립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