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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세계사

[세계사] 명・청의 사상과 문화

명・청의 사상과 문화 

 

썸네일 명청의 사상과 문화
명・청의 사상과 문화

 

학문과 문화의 발달

     명은 원 대 북방 민족의 풍습을 없애고, 한족의 전통문화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에 성리학(주자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고 관학으로 정립하였다. 영락제는 『사서대전』, 『오경대전』, 『영락대전』 등의 유교 경전을 편찬하여 학교 교육과 과거 시험에 활용하였다. 명 중기 이후 왕수인(왕양명)은 관학인 성리학을 비판하며 양명학을 제창하였다. 양명학은 ‘마음이 곧 하늘이 부여한 이치(심즉리)’라 주장하며 실천을 강조하는 지행합일을 내세웠다. 인간의 본질에서 평등하다고 주장하여 서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16~17세기에는 서양 문물의 자극과 상공업 발달을 배경으로 식물학, 농학, 지리학 등 실용적인 학문과 국가 경영에 관심을 기울일 것을 주장하는 실학(경세치용학)이 발전하면서 『천공개물』, 『농경전서』, 『본초강목』 등이 편찬되었다.

     명 말 청 초에는 황종희 등이 전제 군주제를 비판하였고 고염무 등이 실용적인 경세 학풍을 제기하였다. 이러한 학풍은 이민족 지배의 영향으로 현실 정치를 멀리하고 문헌에 근거한 실증적 연구에 집중하는 고증학이 발전하였다. 청은 한족 지식인을 회유하기 위해 『강희자전』, 『사고전서』 등 서적을 편찬하는 한 편, 청에 대해 비판적인 사상은 철저하게 탄압하는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이에 학자들은 현실 정치와 관련이 없는 고증학 연구에 더욱 매진하였고, 금석학·갑골학 등을 발전시켜 학문의 영역을 확대하였다. 청 중기 이후에는 고증학을 비판하면서 시대의 변화에 따른 현실 인식 및 개혁을 강조하는 공양학이 등장하였다.

     또한 명·청 시대에는 새로운 서양 문물이 유입되어 천문학, 과학, 수학 등의 실용 학문이 발전하였다. 선교사들이 선교 활동의 일환으로 지리학, 천문학, 역법, 총과 대포 제작 기술 등을 중국에 소개하였다. 명 대에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는 『천실주의』, 『기하원본』, 『곤여만국전도』 등을 제작하여 중국인의 세계관을 넓혀주었다. 청 대에 아담 샬은 황실 천문대에서 각종 천문 기기를 제작하는 데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8세기에 들어온 일부 선교사들이 조상 숭배를 인정하지 않자 청은 궁정에 봉사하는 선교사 외에는 모두 추방하였다. 이에 따라 청과 서양의 문화 교류도 상당 기간 중지되었다.

 

 

 

 

서민 문화의 발전

     명·청 시대에는 상공업이 발전하고 경제가 성장하여 도시 인구가 늘었으며 서민 계층의 도시 생활과 소비문화가 발달하였다. 경제력을 갖춘 서민이 문화의 주소비층으로 성장하여 이들이 즐길 수 있는 구어체 소설과 희곡이 출판되었다. 서민들이 여가를 즐기면서 대중적인 오락거리인 곡예, 잡기, 마술을 공연하는 종합 예술 연극이 큰 인기를 끌었다. 연극은 도시뿐 아니라 농촌에서도 널리 유행하였으며, 특히 청 대에 베이징을 중심으로 성행한 경극은 노래·대사·춤·무예가 종합된 공연 예술이었다. 인쇄술의 발전으로 다양한 서적의 출판도 큰 폭으로 늘어나면서 과거 수험서뿐만 아니라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비롯하여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 청대에는 『홍루몽』 등이 유행하였으며 이로 인해 문화 수준이 크게 향상되었다.

 

삼국지연의 도원결의 장면, 홍루몽의 한 장면 삽화 이미지
출처 - 금성출판사 고등학교 세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