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전투 | 아테네 군의 전략과 승리
마라톤 전투(기원전 490년 9월)는 제1차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중 아티카 북동부의 마라톤 평원에서 벌어진 결정적인 전투로, 아테네인들은 단지 오후동안에 페르시아의 첫 번째 그리스 침공을 격퇴했다.
배경
페르시아의 팽창: 당시 페르시아 제국은 다리우스 1세 하에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었다. 페르시아는 이미 소아시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등을 정복한 상태였고, 그 영향력을 지중해 서부로 확장하고자 했다.
이오니아의 반란: 기원전 499년에 이오니아 지방의 그리스 도시들이 페르시아의 지배에 반발해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에 아테네와 에레트리아가 군사적 지원을 했는데, 이는 페르시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페르시아의 보복: 아테네와 에레트리아의 개입으로 이오니아 반란이 일시적으로 성공하자, 페르시아는 이들 그리스 도시국가들에 대한 징벌적 원정을 계획하게 된다. 다리우스 1세는 그리스 본토를 정복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먼저 자신에 대한 반란을 지원한 아테네와 에레트리아에 대해 보복하려 했다.
제1차 페르시아 침공_ 기원전 492년~490년
기원전 492년 봄, 다리우스 1세의 사위 마르도니오스가 엄청난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 원정에 나섰다. 페르시아의 해군은 에게해 해안의 국가들을 휩쓸었고, 육군은 트라케와 마케도니아를 복속시켰다.
마라톤 전투_기원전 490년
기원전 490년 페르시아는 다시 한번 원정군을 조직하여 이오니아 반란을 지원한 아테네와 에레트리아를 정벌하기 위해 나섰다. 페르시아 원정군은 낙소스로 상륙하여 6일 만에 에레트리아를 함락시켰고 이후 페르시아 군은 아테나 공략에 나섰다.
페르시아 군은 아티카 지방 동쪽의 마라톤 평야에 상륙했다. 아테네는 자신들의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마라톤에서 페르시아 군과의 결전을 택했다. 급하게 집결한 아테네 군대의 지휘권은 10명의 장군들에게 주어졌는데, 그들은 각각 하루 동안 작전 지휘권을 갖게 되었다. 장군들은 페르시아인들을 기다릴 것인지, 아니면 그들을 공격할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정확히 반으로 나뉘었고, 시민관료인 칼리마코스가 공격을 찬성하기로 결정하여 균형이 깨졌다. 그 후 장군들 중 4명이 자신들의 지휘권을 아테네 장군 밀티아데스에게 넘겨주었고, 이로써 그를 사실상 총사령관으로 만들었다.
아테네 군은 페르시아 군 최강의 기병부대와 평원에서 대결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언덕에 주둔한 아테네 군과 평원에 상륙한 페르시아 군은 며칠 동안 대치했다. 어느 날 동트기 전에 아테네 군은 페르시아의 기병부대가 그 진영에서 일시적으로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밀티아데스는 페르시아 보병대를 총공격하라고 명령했다. 이어지는 전투에서 밀티아데스는 1만 명의 아테네인과 1천 명의 플라타이아인으로 구성된 부대를 이끌고, 전열의 측면을 강화하고 페르시아 군의 최정예 부대를 유인하여 그 중심부를 후방으로 밀어냈고, 그들의 안쪽으로 회전하는 그리스의 날개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거의 포위되자마자 페르시아 군은 달아나기 시작했다. 패배한 페르시아 군이 배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6,400명의 병력을 잃었고, 칼리마코스를 포함한 아테네 군은 192명을 잃었다.
아테네 군대는 1만 5천 명의 페르시아 군대를 물리치고 승리했다. 이 전투는 페르시아 군의 무기보다 아테네 군의 장창, 칼, 갑옷이 더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전설에 따르면 아테네 군의 전령이 마라톤에서 약 40km 떨어진 아테네로 보내졌는데, 그는 페르시아의 패배를 알렸으나 지쳐서 사망했다. 이 이야기는 현대 마라톤 경주의 기초가 되었다. 그러나 헤로도토스는 훈련된 달리기 선수인 페이디피데스가 스파르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전투 전에 아테네에서 스파르타로 보내졌다고 밝혔다. 그는 이틀 동안 약 240km를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의
마라톤 전투의 승리는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아테네가 페르시아의 대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결정적인 전투로, 페르시아 군이 더 이상 무적이 아니고 그리스 국가들도 연합하여 싸우면 승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페르시아에 굴복했던 많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편으로 돌아서게 되었다.
키루스 2세 이래로 정규군의 육지 전에서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페르시아 군은 마라톤 전투에서 유일하게 패해함으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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