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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세계사

[세계사] 서유럽 봉건 사회의 성립

서유럽 봉건 사회의 성립 

 

썸네일 서유럽 봉건 사회의 성립
서유럽 봉건 사회의 성립

 

봉건 사회의 형성

     프랑크 왕국이 분열되던 9세기 무렵부터 노르만족이 비옥한 땅을 찾아 남쪽으로 이동하였다. 노르만족은 이주지에는 키예프 공국, 노르망디 공국, 노르만 왕조 등을 세웠고, 원주지인 스칸디나비아반도에는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를 세웠다. 한편 이 무렵 마자르족, 이슬람 세력 등도 유럽을 침입하여 혼란이 극심해졌다.

     혼란 속에서 중앙 정부가 이들의 침입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자 지방의 세력가들은 스스로 무장하여 전사 계급이 되어갔다. 기사들은 자신보다 세력이 큰 왕이나 제후를 주군으로 삼아 주종 관계를 맺었으며, 상공업이 쇠퇴하여 농촌 중심의 경제 체제가 굳어져 갔다. 한편 지방 세력가는 힘없는 사람들을 보호해 주는 대신 이들을 예속 농민으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이미 이전 시기에 나타난 주종 관계가 확산되고 장원에 기초한 지방 분권이 가속화하여 봉건제가 성립되었는데, 정치적으로는 주종제, 경제적으로는 장원제를 특징으로 하였다.

     주종제에서 주군은 봉신에게 봉토를 수여하고 봉신을 보호할 의무가 있었으며, 봉신은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군사적 봉사는 물론, 만약 주군이 포로가 되었을 경우 몸값을 내는 등의 경제적 의무를 졌다. 주종제는 어느 한쪽이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파기되는 쌍무적 계약 관계였다. 주종제는 세습되었으며, 장원 내에서 봉신은 독립적이었다. 봉신은 장원의 영주로서 자신의 봉토 안에서 주군의 간섭 없이 재판 권과 징세권을 행사할 수 있는 불입권을 소유하였다.

     주종 관계와 장원제를 기반으로 한 봉건제는 지방 분권화를 촉진하여 왕권이 약화하였다. 이후 서프랑크에서는 카페 왕조가, 동프랑크에서는 신성 로마 제국이, 영국에서는 윌리엄에 의해 노르만 왕조가 세워졌다.

 

 

 

 

장원의 구조

     봉신은 영주로서 주군으로부터 받은 봉토를 다스렸으며, 봉토는 촌락의 형태로 한 개 또는 여러 개의 장원을 이루었다. 장원의 높은 곳에는 대개 영주의 성이나 영주관이 있었고, 그 아래에는 교회를 중심으로 농민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시설들이 있었다. 장원의 토지는 경작지, 방목지, 삼림, 황무지 등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경작지는 영주 직영지와 농민 보유 영주의 성지로 나뉘었다. 경작지는 삼포제(춘경지, 추경지, 휴경지로 나누어 경작하던 방식)로 경작되었으며, 공동 경작을 위해 울타리를 치지 않았다.
장원 내의 농민은 자유인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농노였다. 농노는 고대 노예와 달리 결혼하여 가정을 이룰 수 있으며(혼인권), 집에 딸린 작은 토지를 소유할 수 있었다(농지 보유권). 그러나 이들은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는 신분으로서 영주의 허락 없이는 장원을 떠 날 수 없었으며, 영주의 직영지에서 매주 2, 3일간 강제적 노동을 하고(노동 지대), 공납으로 현물을 영주에 게 바쳤다. 또한 장원 내의 방앗간, 제빵소 등의 시설을 의무적으로 이용하고 그 사용료를 영주에게 냈다. 아울러 인두세, 혼인세, 사망세 등을 영주에게 바쳤으며, 영주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아야만 하였다.

 

장원의 구조 이미지
출처 - MiraeN 고등학교 세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