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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세계사

[세계사] 크리스트교 중심의 서유럽 문화

크리스트교 중심의 서유럽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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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트교 중심의 서유럽 문화

 

크리스트교의 성장

     7세기 이후 이슬람 세력의 확장으로 크리스트교 세계에는 5대 교구 중에서 로마와 콘스탄티노폴리스 교구만 남게 되었다. 로마 교회의 주교는 자신을 교황으로 부르고 서유럽 교회를 이끌었으며,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는 비잔티움 제국의 동유럽 교회를 대표하였다.

     8세기 초 비잔티움 제국의 레오 3세가 성상 파괴령(726)을 내리자, 게르만족에게 포교하기 위해 성상이 필요하였던 로마 교회가 이를 거부하면서 동서 교회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이후 크리스트교는 로마 교황을 중심으로 한 로마 가톨릭 교회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를 수장으로 하는 그리스 정교회로 갈라졌다(1054).

     로마 가톨릭 교회는 서유럽에서 교세를 확장하여 정신세계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유럽 사회를 이끌었다. 교황은 대관식을 통해 군주의 통치권에 신성한 권위를 부여하였고, 교회는 성직자, 영주, 농노 등 중세 사회의 신분 질서가 『성서』에 근거한 신의 뜻이라며 정당화하였다. 성직자들은 봉토와 신도들이 기증한 토지를 기반으로 강력한 봉건 세력으로 성장하으며 교황을 정점으로 대주교, 주교, 사제에 이르는 계서제가 확립되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세력이 커지면서 점차 세속화하였다. 성직자들이 국왕이나 제후의 봉신이 되면서 성직자 임명권도 세속 권력이 차지하였으며, 정치권력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부를 축적하는 등 현실 세계에서 힘을 갖게 되고, 성직자가 혼인하거나 성직이 매매되는 등 부패와 타락이 나타났다. 이에 10세기 초 클뤼니 수도원은 청빈, 정결, 순명, 학문 연구, 노동을 권장한 베네딕트 규율로 돌아가 교회를 정화하자며 교회 개혁 운동에 앞장섰고, 이는 여러 지역으로 퍼졌다.

 

 

 

교황과 황제의 대립

     11세기에 교황의 주도로 교회에 대한 세속 군주의 개입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성직 매매 금지, 성직자의 결혼 금지 등을 통 해 부패 척결에 나서는 한편, 성직자 서임권을 둘러싸고 신성 로마 제국의 하인리히 4세와 대립하였다. 교황은 세속 군주의 성직자 서임을 금지하였으나 황제가 이를 무시하자 황제를 파문하였고, 이에 맞서 교황을 폐위하려던 황제는 제후와 주교의 지지를 받지 못하자, 카노사로 교황을 찾아가 사죄하였다(카노사의 굴욕, 1077).

 

카노사의 굴욕 그림
출처 - 금성출판사 고등학교 세계사

 

     서임권 투쟁은 이후에도 계속되었으나 보름스 협약(1122)으로 교황이 서임권을 갖게 되었다. 이후 13세기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 때 교황권은 절정에 달하여 ‘교황은 해, 황제는 달’에 비유되기도 하였다.

 

 

 

 

중세 서유럽 문화

     중세 서유럽에서는 크리스트교 중심의 문화가 발전하였다. 학문은 신학을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며, 철학은 크리스트교 신앙과 교리를 합리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한 보조 학문의 역할로 발전하여 ‘철학은 신학의 시녀’라는 말이 생겨났다. 중세 초기에는 아우구스티누스로 대표되는 교부 철학이 발달하였으나, 십자군 전쟁 이후 이슬람 세계로부터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서유럽에 본격적으로 전해지면서 스콜라 철학이 유행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 대전』에서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꾀하여 스콜라 철학을 집대성하였다. 그러나 13세기 이후 윌리엄 오컴은 신의 존재를 이성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며 신앙과 이성의 분리를 주장하였다.

     학문은 중세 초기에 성직자들은 교회나 수도원을 중심으로 신학, 법학, 수사학, 논리학 등을 연구하였다. 12세기 이후에는 파리나 볼로냐 등 여러 도시에 대학이 세워져 중세의 학문 발전에 기여하였는데, 파리 대학은 신학 연구로, 볼로냐 대학은 법학 연구로 유명하였다. 중세의 대학은 본래 교수나 학생의 조합에서 시작되어 각기 전통이 달랐고, 교회나 영주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치적으로 운영되었다.

     중세 문학은 봉건 기사들의 사랑과 모험담을 담은 기사도 문학이 주류를 이루었다. 카롤루스 대제의 부하였던 기사 롤랑의 무용담을 다룬 『롤랑의 노래』, 게르만족의 전설을 바탕으로 쓴 『니벨룽겐의 노래』, 『아서왕 이야기』 등이 유명하다.

     크리스트교는 중세의 건축, 조각, 그림 등에도 영향을 끼쳐 교회와 수도원 건축이 발달하였다. 건축은 11세기에는원형의 아치를 갖춘 로마네스크 양식이, 12세기부터는 첨탑과 스테인드글라스를 특징으로 하는 고딕 양식이 유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