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중심적 세계관의 침투
만국 공법의 수용
19세기에 전래한 만국 공법은 동아시아 각국 정부로부터 주목을 끌었다. 만국 공법은 중국 중심의 조공·책봉 질서와 달리 주권 국가 사이의 대등한 관계를 원칙으로 새로운 국제 질서의 법적 근간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청과 일본, 조선은 만국 공법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청은 기존의 화이관을 유지한 채 만국 공법을 서구 열강과의 외교 실무에 이용하는 데 그쳤다. 반면에 일본은 만국 공법을 근거로 청·일 수호 조규에서 청과의 대등한 관계를 규정하였다. 또한 강화도 조약에서 조선이 자주국임을 규정하여 조선에 대한 청의 영향력을 배제하려고 하였다. 조선은 만국 공법에 규정된 상호 주권 보장 조항을 활용하여 일본의 조선 침략을 비판하고 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외교 활동의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만국 공법은 명분에 불과했고 실제로는 국가 간의 이해관계와 힘에 좌우되는 것이 제국주의 시대 국제 관계의 현실이었다. 서구 열강은 주권 평등의 원칙을 서구 국가 간에만 적용하고 비서구 국가를 비문명국, 야만국으로 간주하며 불평등한 통상 조약 체결을 합리화하였다.
국가를 다스리는 일상의 권리를 일러 주권이라 하는데, 이 주권은 안에서 행해지기도 하고 밖에서 행해지기도 한다. 주권이 안에서 행해지는 것은 각국의 법도에 따르며, 그것은 백성에게 맡겨지기도 하고 군주에 귀속되기도 한다. …… 주권이 밖에서 행해지는 데는 반드시 타국의 승인이 필요하며 …… 각국은 그 승인 여부를 모두 자주적으로 결정하며 그에 따른 책임을 진다.
- 『만국 공법』 -
사회 진화론의 수용
사회 진화론은 19세기 동아시아에 들어온 서구 사상 중 하나로, 동아시아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사회 진화론은 경쟁으로 말미암은 개인 간의 불평등을 인정하고 약자에 대한 강자의 지배를 당연시하였다. 동아시아 각국은 이러한 사회 진화론을 ‘우리도 힘을 길러야 한다.’라는 자강 운동의 근거로 변형하여 수용하였다. 서구와 같은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아 애국심과 민족정신을 갖도록 국민을 계몽·통합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사회 진화론은 동아시아 근대 민족주의 태동에도 영향을 끼쳤다. 일본에서는 서양 지식인들에 의해 사회 진화론 관련 서적이 다수 번역되었다. 청에서는 중국 최초의 영국 유학생이었던 옌푸가 청·일 전쟁의 패배에 충격을 받고 사회 진화론을 소개하면서 구국의 방법을 찾고자 하였다. 이후 사회 진화론은 량치차오에게 영향을 끼쳐 변법자강 운동의 논리로 활용하였다. 조선에서는 유길준과 윤치호가 사회 진화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조선 사회가 서구 자본주의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사회 진화론은 강대국의 약소국 침략과 지배를 합리화하는 논리에 이용되었다. 사회 진화론에 기반을 둔 자강론은 제국주의 비판에 소홀하였고, 오히려 제국주의 열강을 선망하면서 그 일원이 되고자 하는 소망의 근거가 되었다.
특히 일본에서는 일부 자유 민권론자가 천부 인권설을 버리고 사회 진화론을 받아들이면서 자유 민권 운동을 망상이라고 비판하였다. 나아가 개인은 애국심을 갖고 천황과 국가에 충성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이 사회 진화론은 국가주의와 결합하여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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