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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동아시아사

[동아시아사] 항일 전쟁과 국제 연대

강일 전쟁과 국제 연대 

 

썸네일 - 국제 연대의 노력
항일 전쟁과 국제 연대

 

일본의 침략에 대항한 한・중 연합

     만주 사변을 계기로 만주의 한인 독립군과 중국군은 일본을 공동의 적으로 규정하고 한국 민족의 독립과 중국의 항일을 위한 연대가 형성되었다. 

중국과 한국 양국 군민은 한마음 한뜻으로 일제에 대항하여 싸우고, 인력과 물자는 서로 나누어 쓰며, 합작의 원칙하에 국적에 관계없이 그 능력에 따라 항일 공작을 나누어 맡는다.
- 「조선 혁명군과 중국 의용군의 합의」, 1932 -

 

     남만주의 조선 혁명군은 중국군과 위의 내용에 합의하고 한·중 연합 작전을 전개하였고, 북만주의 한국 독립군도 중국군과 연합 작전을 벌였다. 한국과 중국의 사회주의자들도 동북 인민 혁명군을 조직하여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다.

     중국 관내에서는 한인 애국단 소속의 윤봉길이 일으킨 상하이 훙커우 공원 의거를 계기로 한·중 연대가 활발해졌다. 중국 국민당 정부는 한국의 독립운동이 중국 의 주권 수호와 직결된다고 인식하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1932년에 조직된 비밀결사인 한·중 민족 항일 동맹에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 인사들과 중국 국민당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기도 하였다.

     중·일 전쟁이 일어나자 김원봉은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아 중국 관내에서 조선 의용대를 조직하여 중국군과 함께 항일전을 전개하였다(1938). 조선 의용대는 일본군에 대한 정보 수집, 포로 심문, 후방 교란과 같은 활동을 벌였다. 이들 중 일부는 화북 지역으로 이동해 조선 의용군으로 재편되어 대일 항전을 계속하였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도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한국 광복군을 창설하고 (1940), 화북 지방으로 이동하지 않은 조선 의용대 병력을 흡수하여 군사력을 강화하였다. 일제가 태평양 전쟁을 벌이자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일본에 선전 포고를 하였다(1941). 한국 광복군은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여 인도·미얀마 전선에서 영국군과 연합 작전을 전개하고, 미국 전략 정보처(OSS)와 국내 진공 작전을 추진하였다.

한국 광복군은 중화민국 국민과 합작하여 우리 두 나라의 독립을 회복하고 공동의 적인 일본 제국주의자를 타도하기 위하여 연합군의 일원으로 항전을 계속하였다. …… 우리는 한·중 연합 전선에서 우리 스스로의 부단한 투쟁을 감행하여 동아시아를 비롯한 아시아 민중의 자유와 평등을 쟁취할 것을 약속하는 바이다.
- 「한국 광복군 선언문」, 1940 -

 

 

 

 

반제・반전을 위한 국제 연대

     서구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과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제국주의와 침략 전쟁에 반대하는 반제·반전사상이 대두하였다. 러·일 전쟁 무렵 고토쿠 슈스이는 군국주의를 비판하며 전쟁에 반대하였다. 1907년에는 반제국주의를 목표로 한 동아시아 최초의 국제 연대 조직인 아주 화친회가 도쿄에서 창립되었다. 아주 화친회는 아시아 각 민족의 독립을 위해 상호 원조와 협력을 표방하며 반제국주의 세력의 연합을 추구하였다. 아주 화친회는 창립을 주도한 장빙린을 비롯하여 고토쿠 슈스이, 조소앙, 판보이쩌우 등 동아시아 각국의 지도자와 유학생 등이 참가하여 국제 연대를 이루었다. 안중근도 『동양 평화론』을 집필하여 일본의 한국 침략 포기와 한·중·일의 상호 협력 등을 주장하여 제국주의 침략에 반대하였다.

     1910년 이후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망명한 한국인은 중국인과 다양한 연대 조직을 마련하였다. 신규식, 조소앙, 천치메이, 천리푸 등은 아시아 민족 반일 대동당을 조직하여 항일 연대 활동을 벌였다. 동 아시아 무정부주의자들도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기 위해 동방 무정부 주의자 연맹, 항일 구국 연맹 등을 창설하였다.

     일본에서도 한국인 유학생들이 일본인 반전 운동가들과 연대 활동을 벌였는데,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가 함께 벌인 반제·반전 운동이 대표적이다. 변호사였던 후세 다쓰지는 기소된 한국인 독립운동가를 변호하는 등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침략 전쟁이 길어지면서 중국 내 일본인의 반전 연대 활동도 전개되었다. 하세가와 데루는 상하이에서 전쟁에 반대하는 대일 방송을 하였고, 일본 병사 반전 동맹은 일본군에 투항과 탈영을 호소하였다.

반파시스트 동맹 창립 준비 위원회 선언(1938)
일본 파시스트의 지배 아래 있는 우리 피압박 민중은 일본 국내의 근대 대중이든, 식민지 조선과 타이완의 민족이든 상관없이 우리가 현재 가장 엄중한 갈림길에 이르렀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 우리는 먼저 일본 파시스트 군벌에 반대하는 연합 기구를 건설해야 합니다.
- 『신화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