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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동아시아사

[동아시아사] 북한의 체제 고착화와 경제 건설

북한의 체제 고착화와 경제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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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체제 고착화와 경제 건설

 

사회주의 경제 건설과 김일성 유일 지배 체제의 확립

     북한은 1950년대 중반부터 대대적으로 전후 복구 사업을 추진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농업 집단화 사업을 진행하였으며 개인 상공업을 없애고 사유 재산제를 인정하지 않았다. 아울러 북한은 중공업 중심의 경제 건설과 급진적인 사회주의 개조 정책에 중점을 두고 복구 사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농공 간의 성장 불균형이 심해지자 연안파가 이를 비판하였다. 이에 김일성은 이들을 종파 분자로 몰아 제거하고 반대 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하였다(8월 종파 사건). 이는 당내 비판 세력의 소멸을 의미하는 동시에, 김일성의 중공업 우선 발전 전략의 채택으로 이어져 농업과 경공업의 희생을 초래하였다. 나아가 김일성은 소련 등의 원조가 삭감되고 자본·물자·기술 등이 부족해지자 집단적 증산 운동이라 할 ‘천리마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북한은 제1차 7개년 계획(1961~1967)을 수립하는 한편, 주체사상을 유일사상으로 체계화하는 작업을 추진하였다. 1972년에는 ‘사회주의 헌법’을 공포하여 김일성 유일 지배 체제를 강화하였다. 이에 따라 김일성에 대한 개인숭배가 더욱 강화되었다. 경직된 체제, 소련의 원조 중단, 막대한 군사비 지출 등으로 경제가 급격히 침체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1980년대 중반부터 합영법을 제정하여 경제특구를 지정하는 등 외국 자본을 유치하고자 노력하였다. 994년 김일성 사후에는 김정일이 국방 위원장으로 취임하여 군부를 앞세워 선군 정치를 펼쳤고, 외교와 기술 관료를 중심으로 변화를 모색하였다. 2011년 김정일이 사망하자 김정은이 대를 이어 권력을 장악하여 3대 세습이 이루어졌다.

 

 

 

 

고립되어 가는 북한

     1980년대 이후 북한은 경제 성장이 정체되고 식량마저 부족해졌다. 특히 1990년대에 들어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권이 몰락하자, 경제적·외교적으로 고립되는 상황에 놓였다. 1990년대 중반에는 흉작과 수해로 극심한 식량난을 겪었다.

     북한은 이러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2000년대에 남북 대화와 함께 남한과의 경제 교류에 나섰다. 금강산 개발과 개성 공단 사업 등은 대표적인 남북 교류 사업이다.

     그러나 북한은 중국이나 베트남과 달리 적극적인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기보다는 체제 유지에 중점을 두고 핵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로 인해 남한과의 경제 교류가 지지부진할 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의 고립도 심해지고 있다.

 

남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
출처 - MiraeN 고등학교 동아시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