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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동아시아사

[동아시아사] 북방 민족의 성장과 새로운 외교 질서_대외 관계

북방 민족의 성장과 새로운 외교 질서_대외 관계 

 

썸네일 - 북방 민족의 성장과 새로운 외교 질서
북방 민족의 성장과 새로운 외교 질서

 

송의 대외 관계와 교역

     을 세운 조광윤(태조)은 5대 10국의 분열을 통일하였다. 그는 무인과 절도사의 권한을 축소하고 문치주의를 채택하였다. 아울러 과거제의 위상을 강화하고 전시를 도입하였다. 이에 따라 황제권이 강화되고 문신 관료제가 확립되었다. 그러나 문치주의로 군사력의 약화를 초래하여 송은 거란(요), 서하, 금 등에 군사적인 열세에 놓이자, 그들과 맹약을 맺고 매년 막대한 물자를 제공하여 평화를 유지하려고 하였다.

     11세기 중엽 왕안석이 등장하여 재정 수입을 늘리고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 신법을 시행하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당쟁이 일어나고 국론이 분열되면서 오히려 국력이 약해졌다. 이후 송은 금의 침공을 받아 강남으로 이주하였다.

     송이 멸망한 후 임안(항저우)을 수도로 남송이 세워졌다(1127). 남송은 금과의 전쟁을 꺼려 군신 관례를 맺고 비단과 은 등의 물자를 바쳤다. 그러나 여러 차례 대규모 전쟁을 벌이는 등 두 나라의 관계는 안정적이지 않았다. 

     한편 10세기 이후 동아시아에서는 송을 중심으로 한 해상 교역이 크게 발달하였다. 조선술의 발달과 나침반의 이용 등으로 원거리 항해의 안정성도 높아졌다. 송은 명주, 취안저우, 광저우 등의 주요 항구에 시박사를 설치하여 해상 무역을 관할하게 하였다. 송의 무역 상대 국은 동아시아를 넘어 동남아시아와 아라비아까지 확대되었다.

 

10세기 후반~11세기의 동아시아 교역
출처 - MiraeN 고등학교 동아시아사

 

 

 

 

고려의 대외 관계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이 고려에 친선을 요구하자, 북진 정책을 추진하던 고려는 이를 거절하였다. 이에 거란은 송을 공격하기에 앞서 993년 고려를 침공하였다. 1차 침입 때는 서희가 소손녕과 외교 담판을 벌여 송과 관계를 끊겠다고 약속하는 대신 청천강에서 압록강에 이르는 강동 6주를 확보하였다. 거란은 두 차례 더 고려를 침공하였으나, 고려는 이를 물리쳤다. 이후 고려, 송, 거란 사이에 세력 균형이 이루어졌으며, 실리 확보를 위해 거란과 친선 관계를 맺고 조공하였다.

     12세기 초 여진족이 성장하자 고려는 윤관을 파견하여 정벌에 나섰다. 윤관은 별무반을 이끌고 나가 여진을 물리치고 동북 지방에 9성을 쌓았으나 1년 여 만에 돌려주었다. 이후 여진은 금을 세우고 강대국으로 성장하면서 고려에 조공을 요구하였고, 고려 조정에서는 찬반 의견의 대립 끝에, 결국 현실을 인정하고 금과 군신 관계를 맺었다. 한편 고려는 거란, 금에 조공하면서도 송 및 남송과 해상 교역을 유지하면서 각종 문물을 교류하였다.

 

척경입비도 이미지
출처 - MiraeN 고등학교 동아시아사

 

 

 

 

일본의 대외 관계

     일본은 10세기 이후 주변국과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축소해 나갔다. 그러나 송과 활발히 무역하며 많은 양의 동전을 들여오는 등 주변국과 교역을 지속하였다. 송의 동전은 일본 열도에서 점차 보편적 통화로 사용되었다. 일본은 불교 승려를 통해 송과 교류하였고, 쓰시마를 통해 고려와 교류하였다.

     일본은 11세기 후반 이래 지방관이 파견한 사신과 지방 상인 등을 통해 고려와 무역하였는데 수은, 유황, 칼 등을 가지고 와서 식량, 인삼, 서적 등으로 바꾸어 갔다. 12세기 후반에는 쓰시마섬과 고려 사이에 조공 형식의 무역 관계가 형성되었다. 

     12세기 말에 헤이안 귀족들의 힘이 약해지고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가마쿠라 막부를 수립하고 쇼군에 취임하였다. 이로써 일본에 무가 정권이 탄생하였다. 그는 천황, 귀족, 사원이 가지고 있던 장원에서 점차 무사의 토지 지배가 이루어지도록 하였고 치안 유지와 장원 관리를 자신의 무사에게 맡겼다. 막부 성립 이후 정치의 실권은 점차 쇼군을 정점으로 하는 막부로 옮겨왔다. 또한 막부는 중국 항로를 장악하여 무역의 주도권을 확보하였다. 주로 송 상인이 와서 무역하였지만 일본 상인이 중국으로 건너가기도 하였고, 많은 수의 승려가 송에 건너가 불교를 공부하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