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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한국사

[한국사] 대한민국 정부 수립

대한민국 정부 수립 

1948년 7월 20일에 제헌 국회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승만은 그달 24일 중앙청에서 대통령 취임 연설을 하였다. 그리고 1948년 8월 15일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하였다. 

 

썸네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대한민국 정부 수립

 

대한민국 정부 수립

     헌법을 공포한 제헌 국회는 이후 헌법에 명시된 절차에 따라 국회에서 간접 선거로 이승만을 대통령, 이시영을 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이후 이승만 대통령이 대법원장과 국무총리를 임명하면서 내각 구성이 완료되었다. 국회에서도 국회의장이 새롭게 선출되어 삼권 분립의 원칙에 따른 민주적 정부가 구성되었다.

     1948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하였다. 정부는 옛 총독부 건물을 정부 청사로 사용하기로 하고 태극기를 게양하였다. 미군정 사령관 하지는 이날 미군정이 끝났음을 선언하였고, 대한민국 정부가 미군정으로부터 모든 행정권을 넘겨받았다.

     1948년 12월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 5・10 총선거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유엔 총회는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선거가 가능하였던 한반도 내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결의안을 승인하였다. 이후 대한민국은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로부터 승인을 받아 국제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사진
대한민국 정부수립 <출처-동아출판 고등학교 한국사>

 

 

 

대한민국 정부의 당면 문제

     대한민국 정부는 수립 직후 여러 문제에 당면하였다. 8・15 광복 이후 남한 경제는 물가 폭등, 미군정의 미숙한 정책, 일제의 정책에 따른 산업 편중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치솟는 물가를 잡고, 경제를 재건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한편 정부 수립 이후에도 여전히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사회가 혼란하였으며,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세력도 많았다. 이에 이승만 정부는 반공 체제를 강화하여 국회 안의 반대 세력을 제거하는 한편, 보안법을 제정하고, 국민 보도 연맹을 조직하였다. 

 

 

 

북한 정권의 수립

    8・15 광복 직후 북한 지역에서는 정치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평양에서는 조만식을 중심으로 평안남도 건국 준비 위원회가 결성되었고, 북한 각 지역에 인민 위원회가 조직되었다. 국외에 있던 여러 정파의 사회주의 인사들도 국내로 모여들었다. 이러한 가운데 38도선 이북에 진주한 소련군인 점령 기구를 설치하여 북한 지역을 통치하다가 점차 인민 위원회에 행정권을 넘겨주어 자치를 인정하였다. 이에 따라 각 지역의 인민 위원회는 관공서와 생산 기관을 접수하고 치안을 유지하였다.

     1945년 12월에 조만식 등 우익 세력이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의 결정에 반대하자, 소련군은 우익 세력을 축출하였다. 1946년 2월 각 지방의 인민 위원회를 총괄하는 중앙 권력 기구로서 북조선 임시 인민 위원회가 출범하고 김일성이 위원장이 되면서 실질적 북한 정권 수립 작업이 진행되었다. 이후 북조선 임시 인민 위원회를 중심으로 사회주의 체제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북조선 임시 위원회는 토지 개혁을 실시하여 5정보를 넘는 토지를 무상 몰수하여 농민에게 무상 분배하였다(1946). 이어 노동법과 남녀평등권법을 시행하였다. 또한 공장, 광산, 철도를 비롯한 주요 산업과 지하자원, 산림 등 각종 자원을 국유화하였다. 북한에서 소련의 후원 아래 사회주의 체제가 강화되자, 이에 반대하는 사람 중 다수가 38도선 이남으로 이동하였다.

 

 

 

     북한은 유엔이 남한만의 단독 선거를 결정하자, 단독정부 수립을 비판하고 남북 협상에 참여하는 등 통일 정부 수립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1947년 북조선 임시 인민 위원회를 북조선 인민 위원회로 개편하고 헌법 초안을 작성하였으며, 1948년 초 군대를 창설하는 등 단독 정권 수립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북한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1948년 8월 25일에 이북 지역에서 최고 인민 회의를 구성할 대의원 선거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9월 초에는 최고 인민 회의를 열어 헌법을 제정하고, 김일성을 초대 수상으로 선출하였다. 1948년 9월 9일에는 김일성을 중심으로 내각을 구성하고,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수립을 선포하였다. 

     이로써 남과 북에는 체제를 달리하는 대한민국 정부와 북한 정권이 수립되었다. 38도선은 분단선이 되었고 남북 간의 대립과 갈등은 심화되었다. 

 

북한 초대 내각 사진
출처: 동아출판 고등학교 한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