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상이 유행하다
전라북도 고창 선운사에는 고려 때 만들어진 마애여래 좌상이 있다. 19세기 백성 사이에는 이 마애불의 명치 부위에 작은 부처를 모시는 감실이 있는데 이곳에 비결이 들어 있으며, 이 비결이 나오면 조선이 망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이야기가 널리 펴졌다. 어려운 생활로 허덕이던 당시 백성은 미륵이 도래하여 현실의 고통을 없애 주기를 바랐다.
서학의 전래와 실학의 발달
17세기 무렵 중국에 다녀온 사신들은 천주교 서적, ⌜곤여만국전도⌟, 천리경 등의 서양 문물을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에 소개하였다. 서학은 조선의 과학 기술 발달과 지식인들의 세계관에 영향을 주었다. 한편, 조선의 지배층은 성리학 이론에 치우쳐 당시 사회 변동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였다. 이에 실증적인 연구 방법으로 사회 모순을 해결하려는 실학이 제기되었다.
농업 중심 개혁론자들은 토지 제도를 개혁하여 농촌 사회를 안정시키고자 하였다. 유형원은 신분에 따라 차등을 두어 일정한 면적의 토지를 나누어 주는 균전론을 제시하였다. 이익은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토지는 매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한전론을 주장하였고, 정약용은 토지를 공동으로 경작한 뒤 분배하는 여전제를 주장하였다. 반면, 상공업 중심 개혁론자들은 청의 문물 수용과 상공업 진흥을 주장하였다. 유수원은 직업의 평등을 강조하였고, 홍대용은 기술 혁신과 문벌제도 폐지를 주장하였다. 박지원은 수레와 선박, 화폐 유통의 필요성을 강조하였으며, 박제가는 수레 외 배의 이용을 주장하고, 소비의 촉진을 통한 경제 활성화를 강조하였다. 실학자들이 우리의 전통과 현실에 관심을 기울이고 역사, 지리, 언어 등을 연구하면서 국학이 발달하였다.
예언 사상의 유행
조선 후기 지배층의 수탈과 거듭된 재난, 질별이 겹치자 백성 사이에서 말세의 도래와 변란을 예언하는 사상이 널리 펴졌다. 특히 ⌜정감록⌟은 백성을 구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인물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하여 백성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 밖에도 도참설 등의 예언 사상과 미륵이 나타나 세상을 구제한다는 미륵 신앙이 유행하였다. 이러한 예언 사상과 미륵 신앙은 사회에 널리 퍼져 19세기 사회 변혁이 일어나는 배경이 되었다.
천주교의 확산과 동학의 창시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정권에서 밀려난 남인 계열의 실학자들이 천주교를 서양 학문이 아닌 신앙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천주교는 인간 평등과 사랑, 박애 등을 강조하여 하층민과 중인들, 상민과 부녀자들 사이에서 빠르게 전파되었다. 천주교가 교세를 확장하는 가운데 천주교 신자가 유교적 제사 의식을 거부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에 정부는 성리학적 질서를 무너뜨린다는 이유에서 천주교를 사교로 규정하고 탄압하였다.
한편, 지배 체제의 모순이 심화되고 서학이 확산되는 가운데 경주의 몰락 양반인 최제우가 동학을 창시하였다(1860). 동학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바탕으로 인간 평등을 강조하여 하층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또한 낡은 세계가 끝나고 곧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후천개벽을 주장하여 사회 변혁을 바라는 농민들 사이에 급속히 전파되었다. 정부는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동학의 교세가 확산되자 동학을 사교로 규정하고 세상을 어지럽힌다는 죄목으로 교주 최제우를 처형하였다. 그러나 2대 교주 최시형이 교단을 정비하고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펴내 교리를 정리하면서 동학은 삼남 지방의 농민을 중심으로 하여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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