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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세계사

[세계사] 과학 혁명과 계몽사상

과학 혁명과 계몽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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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혁명과 계몽사상

 

과학 혁명

     르네상스 이후 유럽인은 그리스 철학과 이슬람 과학의 영향을 받아 자연 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며, 정확한 관찰과 실험을 위해 망원경, 현미경 등을 발명하였다. 베이컨과 데카르트가 근대적 연구 방법론을 제시하면서 과학 실험과 합리적 추론에 따른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과학 혁명이라 불리는 업적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천문학에서의 업적은 유럽인의 의식을 크게 변화시켰다. 코페르니쿠스는 중세의 우주관이었던 천동설에 의문을 품고 태양 중심의 지동설을 주장하였고, 뒤이어 케플러는 화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타원 궤도를 그리며 회전함을 밝혀 지동설을 수정・입증하였다.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제작하고 천체를 관측하여 지동설을 입증하였으며, 낙하 실험으로 새로운 물리 법칙을 발견하였다.

     과학 혁명은 뉴턴에 의해 완성되었다. 뉴턴은 지구와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일정하게 움직이는 원인으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여 지동설을 증명하였고, 보편적인 수학 공식으로 설명하였다. 나아가 모든 자연이 거대한 기계처럼 스스로 운동하며, 인간의 이성은 이를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기계론적 우주관을 확립하였다. 의학 분야도 발전하여, 베살리우스는 인체 해부학의 토대를 마련하였고, 하비는 혈액 순환의 원리를 발견하였다.

     유럽 각국에서는 왕실의 후원으로 과학 연구를 위한 학회 등이 설립되었는데, 영국의 왕립학회와 프랑스의 과학 아카데미가 대표적이다. 이 단체들은 과학뿐만 아니라 사회 현상에도 관심을 가져 인구·경제·무역·항해 등 많은 주제를 연구하였다.

     이처럼 17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일어난 과학의 발전과 세계관의 변화를 과학 혁명이라고 한다. 과학 혁명을 거치며 사람들은 점차 합리적인 사고를 존중하게 되었고, 이것은 계몽사상의 토대가 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구도와 코페르니쿠스의 천구도
출처 - 금성출판사 고등학교 세계사

 

 

 

 

근대 철학과 정치사상

     과학 혁명으로 과학적 사고방식이 발달하면서 근대 철학도 발달하였다. 영국에서 베이컨은 실제로 관찰한 결과에서 출발하여 일반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귀납법을 옹호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로크는 인간의 경험과 감각을 지식의 원천으로 여기는 경험론을 주장하였다.

     유럽 대륙에서는 주로 합리론이 발전하였다. 프랑스에서 데카르트는 대전제를 제시한 후 그것을 분석하면서 개별적 사실에 관한 결론을 제시하는 연역법을 주장하고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여 합리론의 토대를 닦았다.

     영국의 홉스와 로크는 왕권신수설에 반대하며 자연법사상에 바탕을 둔 사회계약설을 주장하였다. 자연법사상은 현실의 법 위에 존재하는 근원적인 보편타당한 원리가 있다는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사회 계약설은 자연 상태에 살던 개인들이 자신들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사회 계약을 맺어 국가가 등장하였다는 학설이다. 홉스는 그의 저서에서 인간이 혼란한 상태를 벗어나려고 상호 간에 계약을 맺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강력한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당시의 절대 군주제를 옹호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반면 로크는 개인이 생명과 자유, 재산을 보호받기 위해 정부에 권리를 위탁하였으며, 정부가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국민은 저항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사상을 계승한 프랑스의 루소는 일반 의지의 형성과 인민 주권의 원리를 제시하였다. 이러한 로크와 루소의 사상은 시민 혁명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계몽사상

     17세기 유행한 과학 혁명은 18세기 계몽사상의 출현에 영향을 주었다. 계몽사상은 인간의 이성을 바탕으로 낡은 관습과 미신을 타파함으로써 사회가 진보할 수 있다는 사상으로, 사회의 진보를 위해서 교육과 실천을 중요시하였다. 기계론적 우주관과 함께 이성을 중시하는 합리주의 철학과 로크의 정치사상이 계 몽사상의 성립에 영향을 주었다. 계몽사상가들은 이성의 소유자인 인간 개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옹호하고, 절대 왕정을 비판하여 시민 혁명에 큰 영향을 주었다.

      대표적인 계몽사상가인 볼테르는 계몽 전제 군주를 지지하였고, 온갖 특권을 누리던 성직자와 귀족을 비판하여 시민의 지지를 받았으며, 신앙과 언론의 자유를 강조하였다. 몽테스키외는 영국의 제도를 모범으로 여겨 입법· 사법·행정의 삼권 분립을 주장하였다. 루소는 홉스, 로크의 사회 계약설을 바탕으로 전체 인민의 결집된 의사, 즉 인민 주권을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를 강조하여 자유, 평등, 국민 주권의 이념을 제시하였다. 그의 사상은 프랑스혁명과 민주주의 이념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한편 디드로와 달랑베르는 당대의 과학적이고 실생활에 유용한 지식을 집대성한 『백과전서』를 편찬하여 계몽사상의 확산에 기여하였다.

     계몽사상이 확산되는 가운데 경제 분야에서는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해야 한다 는 자유방임주의 경제 이론이 등장하였다. 영국의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정되는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주장하여 고전 경제학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17, 18세기 유럽 문화

     17세기 유럽에서는 절대 왕정의 영향으로 군주의 권위를 상징하는 호화롭고 웅장한 바로크 양식이 발전하였다. 건축에서는 베르사유 궁전이 대표적이고, 회화에서는 렘브란트의 작품이 유명하다.

     18세기 부터는 경쾌하고 섬세한 로코코 양식의 건축과 회화가 유행하였는데, 화가들은 주로 귀족과 부유한 시민 계급의 향락적 생활을 그렸다.

     한편 17, 18세기 음악에서는 바흐, 헨델로 대표되는 바로크 음악과 모차르트, 베토벤 중심의 고전 음악이 발전하였다. 문학에서는 고전주의 문학이 유행하였는데 프랑스의 라퐁텐, 독일의 괴테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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