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 대원군이 통치 체제를 정비하다
조선 시대에는 관복에 흉배라는 장식물을 부착하여 착용자의 신분을 나타냈다. 흥선 대원군의 관복에는 기린 한 마리가 구름 속을 헤치며 달리는 모습이 금실과 은실로 수놓아져 있다. 이러한 기린흉배는 흥선 대원군이 왕자나 대군의 예우를 받았음을 알려 준다. 고종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 부친인 흥선 대원군이 신정 왕후(조대비)의 지원을 받아 정치에 참여하였다.
통치 체제 개편
1863년 아들이 없던 철종을 이어 고종이 왕위에 올랐다. 나이 어린 고종을 대신해 대왕대비가 수렴청정하였지만, 실제로는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 대원군이 국정 운영을 주도하였다. 당시 대내적으로는 세도 정치와 삼정의 문란으로 전국에서 농민 봉기가 계속되었고, 대외적으로는 서양 세력의 통상 요구가 거세지고 있었다.
정치적 기반이 약했던 흥선 대원군은 지지 세력을 확보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종실을 관장하던 종친부를 권력 기구로 만들고 종친을 우대하였으며 안동 김씨를 비롯한 세도 가문의 중심인물들을 몰아내고 당파와 관계없이 오랫동안 정권에서 소외되었던 남인과 북인을 등용하였다. 무신도 적극적으로 포섭하였다.
중앙 정치 기구도 개편하였다. 세도 가문의 핵심 권력 기구로 왕권을 제약하였던 비변사를 혁파하여 사실상 폐지하였다. 의정부의 기능을 회복하고, 삼군부를 다시 설치하여 행정권과 군사권을 나누어 맡도록 함으로써 권력 독점을 견제하였다. 더불어 ⌜대전회통⌟과 ⌜육전조례⌟ 등 법전을 편찬하여 통치 질서를 바로잡고자 하였다. 또한 해안에 수시로 나타나는 이양선에 대비하고자 수군을 강화하고, 신무기 제조에 힘을 기울였다.
경복궁 중건과 서원의 철폐
흥선 대원군은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임진왜란 때 불탔던 경복궁 중건에 착수하였다. 하지만 경복궁 중건 사업은 많은 부작용을 일으켰다. 계획보다 공사 규모가 커지며 재정이 부족해지자 원납전이라는 기부금을 강제로 징수하였고, 도성문을 통과하는 물건에 통행세를 부과하였다. 고액 화폐인 당백전을 발행해 물가가 크게 오르면서 경제적 혼란이 발생하였다. 또한, 많은 농민이 공사에 동원되어 고통받았고, 부족한 목재를 채우기 위해 양반의 묘지림까지 벌목하였다. 무리한 경복궁의 중건은 양반과 백성의 불만을 샀다.
조선 후기 서원은 양반 세력의 근거지로 비리의 온상이었다. 난립한 서원은 면세와 면역의 특권을 누리며 국가 재정을 악화시켰고, 교화를 구실로 농민을 수탈하였다. 서원은 운영 비용을 지방관에게 부담시킬 정도로 그 위세가 컸다.
흥선 대원군은 재정을 확보하고, 향촌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양반의 기반을 약화하기 위해 서원 철폐에 나섰다. 집정 직후 서원을 조사하였고 함부로 서원을 건립하지 못하도록 지시하였다. 이어 본격적인 서원 정리에 나서 사액을 받지 못한 서원을 정리하였고, 1871년에는 사액 서원 47곳만 남기고 모두 정리하였다. 서원에 소속되었던 토지와 노비는 향교와 지방 관아 등에 귀속하였다.
농민은 서원 철폐를 반겼지만, 각지의 유생은 철폐 반대 운동에 나섰다. 흥선 대원군은 이들 유생의 집회를 강제로 해산하는 등 강력히 대응하였다. 이는 훗날 흥선 대원군이 물러나는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수취 체제 개편
삼정으로 대표되는 수취 체제의 개혁은 민생 안정과 국가 재정 확충을 위한 중요한 과제였다. 흥선 대원군은 전정의 문란을 바로잡기 위해 세력가들이 함부로 농민의 토지를 빼앗지 못하게 하고, 양전 사업으로 토지 대장에서 누락된 토지를 찾아 조세를 부과하였다.
군정의 폐단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호포제를 실시하였다. 군포를 개인이 아닌 호를 기준으로 내게 하였고, 상민에게만 거두던 군포를 양반 에게까지 징수하여 신분에 관계없이 세금을 부과하였다. 호포제 시행은 국가 재정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환곡의 폐단은 사창제를 시행하여 해결하고자 하였다. 향리가 중간에서 환곡을 착복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환곡 운영을 민간에 맡겼다. 사창제가 시행되면서 환곡의 고리대적인 성격은 완화되어 관리의 부정이 줄고 농민의 부담도 다소 줄었다.
이러한 흥선 대원군의 개혁 정책은 국가 기강 확립과 민생 안정에 기여하였으나 전제 왕권의 강화를 목표로 추진하였다는 한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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