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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세계사

[세계사] 위진 남북조 시대

위진 남북조 시대 

 

 

 

위진 남북조 시대의 전개

     3세기 초 후한 멸망 이후 중국은 위·촉·오가 경쟁하는 삼국 시대 되었다. 삼국은 위를 계승한 사마염이 세운 진(晉)이 중국을 다시 통일하였으나, 황실의 내분으로 혼란이 계속되었다. 이때 북방의 다섯 민족인 5호(흉노, 갈, 선비, 저, 강)가 화북 지역으로 내려와 여러 왕조를 세우면서 5호 16국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5호에 의해 수도를 점령당한 진은 강남으로 이주하여 동진을 세웠다. 동진에 이어 송이 강남 지역에 건국되고, 선비족이 세운 북위가 화북 지역을 통일하면서(439) 남북조 시대가 열렸다.

     북위는 초기에 선비족의 기풍을 중시하였으나 효문제 때 중국식 통치 제도와 문화를 받아들여 제도를 정비하는 한화 정책을 시행하였다. 효문제는 수도를 북쪽의 평성(다퉁)에서 한족의 기반이었던 뤄양으로 옮기고 한족 성씨 사용과 한족과의 결혼을 장려하였으며 선비족의 복장·언어를 금지하는 등 적극적인 한화 정책을 펼쳤다. 이에 북방 민족의 문화와 한족의 문화가 융합(호한 융합)되었고 이어지는 수·당 문화의 토대가 되었다. 아울러 자영농을 육성하기 위해 균전제를 실시하여 농민에게 토지를 분배하였다. 이러한 개혁은 선비족의 반발을 샀고, 효문제 사후 내분이 일어나 동위와 서위로 분열되었다.

     한편 동진은 토착민과 이주민의 대립, 문벌 정치의 폐단으로 정치가 불안하여 오래가지 못하였고, 이후 송, 제, 양, 진으로 빈번히 왕조가 교체되었다. 한족이 강남으로 이동하면서 창장강 유역을 개발하고 벼농사를 보급하여 강남 지역의 경제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이에 강남의 인구도 늘어났고, 한족의 문화와 북방 민족의 문화 간의 융합도 활발히 일어났다.

 

 

 

 

삼국시대 남북조시대 표
출처 - MiraeN 고등학교 세계사

 

문벌 귀족 사회의 형성

     위진 남북조 시대에는 9품중정제가 시행되었다. 9품 중정제는 각 주현에 중정관을 두어 재덕과 명망에 따라 인재를 9품으로 나누어 중앙에 추천하는 제도이다. 원래 향촌의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점차 중앙의 고위 관리나 지방 유력 호족이 자신의 일족을 추천하면서 능력보다 가문이 중요해졌다. 그 결과 호족을 비롯한 지배층이 높은 관직을 세습하는 문벌 귀족 사회가 형성되었다. 문벌 귀족은 대토지를 소유하고 중앙 고위 관직을 독점하며 풍요로운 삶을 누렸다.

 

남북조시대 지도
출처 - MiraeN 고등학교 세계사

 

 

 

 

 

귀족 문화의 발달

     수가 다시 중국을 통일하는 6세기 말까지 분열이 지속되면서 남조와 북조는 각기 다른 문화를 발전시켰다. 이러한 문화는 전쟁과 혼란으로 인구 이동과 민족 간 융합이 활발해지면서 수·당대 문화 번영의 기초가 되었다.

     북조에서는 유목민의 강건하고 소박한 기풍이 문화에 더해졌고, 국가는 유교를 존중하였다. 반면 남조에서는 귀족 중심의 자유분방한 문화가 발달하였고,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을 반영하듯 노장사상과 청담 사상이 유행하였다. 위진 시대부터 유행하였던 청담은 귀족들이 혼란산 사회에 염증을 느끼고 세속을 떠나 인물평론과 철학적 논의 등을 나누던 풍조로, 죽림칠현이 대표적이었다. 

     불교는 남조와 북조 모두에서 유행하였다. 한 대에 전래된 불교는 북조의 여러 왕조에 본격적으로 수용되어 왕권 강화에 이용되었다. 특히 깊이 있는 교리와 화이 여부를 차별하지 않는 특성은 북조왕실의 환영을 받았고, 서역의 승려인 구마라습은 불경을 한자로 번역하였고, 동진의 법현은 인도로 순례를 떠나기도 하였다. 불교의 융성으로 윈강, 룽먼 등지에 거대한 석굴 사원을 만들었다. 남조에서도 양 무제와 같은 황제가 불교를 지원하였다.

     태평도와 오두미도는 전통적인 민간 신앙과 불로장생의 신선 사상을 바탕으로 도가 사상이 결합되어 도교로 발전하였다. 도교는 불교의 자극을 받아 교단을 마련하며 토착 종교의 모습을 갖추어 나갔다. 현실의 삶에 초점을 둔 도교는 황실에 수용되었고, 비교적 민중성이 강하여 민중에서도 유행하였다.

    예술에서는 귀족의 취미 생활과 정신세계를 반영한 작품이 많이 나왔다. 문학에서 당시 지식인의 현실 도피적인 경향을 보여 주는 도연명의 시 『귀거래사』가 인기를 끌었고, 회화에서는 인물의 사소한 표정과 몸진 등이 잘 묘사된 고개지의 그림 ⌜여사잠도⌟가 유명하였다.